2020년 12월 20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20주차(53문답)

[제53문] 성신께 관하여 우리는 무엇을 믿습니까? [대답] 첫째, 성신은 성부와 성자와 함께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창 1:2; 마 28:19; 행 5:3-4; 고전 2:10; 고전 3:16; 6:19). 둘째, 그분은 또한 나에게도 주어져서(고후 1:21-22; 갈 4:6; 엡 1:13) 나로 하여금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은덕에 참여하게 하며(요 16:14; 고전 2:12; 갈 3:14; 벧전 1:2) 우리를 위로하고(요 15:26; 행 9:31)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요 14:16-17; 벧전 4:14). 

이제까지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하나님과 아들과 그리고 우리의 구속을 다루는 기사 2번부터 7번까지 설명을 끝마쳤습니다(신앙고백문답에서 문답 29-52). 신앙고백문답의 여덟 번째 기사에서는 성신과 성화에 대해 말합니다. 지금까지 신앙고백 2-7문답이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주제 아래 전개되어 왔듯이, 사도신경(기사 8-12번)의 나머지 분량도 성신의 주제 아래 숙고할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신앙고백문답 제53번은 여덟 번째 내용인 “성신을 믿사오며”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합니다. 여기서는 거룩한 삼위일체의 신성한 삼위에 관한 두 가지를 고백합니다.

첫째, 성신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영원히 공존하시는 동일한 하나님이십니다. 신앙고백문답 제25문답을 다시 한 번 읽고 연구해 본다면 본 문답에 대해 큰 도움을 받게 될 됩니다. 우리는 성신님을 ‘그것’(가령, KJV이 로마서 8:16에서 그렇게 번역했듯이)이라고 불러서는 결코 안됩니다. 물론 성부나 성자에게도 ‘그것’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성신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모든 신성의 특성을 동일하고도 완벽하게 지니셨습니다.

둘째, 성신님의 주된 사역에는 우리를 성화시키시는 부분이 있습니다(제24문답 참조). 이 말의 의미는, 성신께서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심으로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대신하신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덕을 개개인에게 적용시키신다는 의미입니다.

이 시점에서 과거의 중요한 역사를 검토해 보는 것은 개혁된 신앙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될 것입니다. 앞서 1618-1619년에 이곳의 주제인 성신의 은혜와 능력을 연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혁주의 교회들의 총회가 네덜란드의 도르트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 ‘도르트 총회’는 (우리가 앞서 제30문답 토의에서 보았던) 신학자 알미니우스(James Arminius, 1516-1609)의 잘못된 가르침을 정죄하였습니다.

알미니우스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주장하기를, 하나님의 은혜와 성신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졌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들이거나 안 받아들이는 문제는 개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면서, 당시 네덜란드의 개혁 교회 안에서 활발한 가르침을 전개했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알미니안주의’는 하나님의 은혜는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진다는 것이고, 그리고 성신님은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렇게 많은 사역을 베풀지 않으신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들 모두에게 주어진 은혜와 의지를 사용하여 성신의 사역에 협력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해야만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성신께서 베푸시는 일정한 능력과 죄인들의 의지가 합쳐질 때에 가능하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개혁된 교회의 믿음의 선진들은 이러한 알미니안주의자들의 가르침을 비성경적이라고 보아 단호히 정죄했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잘못된 가르침에 대한 대안으로 ‘불가항력적 은혜의 교리’를 성경적 진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은 선택된 죄인들을 위한 특별한 소명과 특별한 은혜에 대해 가르쳤는데, 이를 위해 그리스도의 성신께서 무한하신 능력으로 그들에게 임재하신다고 했습니다. 성신께서는 선택된 자들을 개심시키고, 그들의 의지가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향할 수 있도록 능력을 베푸십니다. 성신께서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성도가 거역할 수 없도록 불가항력적이며 은혜로운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성도를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은덕’에 참여케 하시는 것입니다.

불가항력적 은혜 교리를 가르치는 성구들은 많습니다. 다소의 사울과 빌립보의 루디아의 경우는 전형적인 실례입니다(행 9:1-6; 16:14). 그리고 요한복음 6:37; 사도행전 13:48; 로마서 8:29-30; 에베소서 2:1, 5-10; 빌립보서 2:13 등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도르트에서 모인 개혁주의 교회들의 총회에서는,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제기한 다섯 가지 항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정죄하기 위하여 ‘다섯 가지 성경적 선언’ 혹은 ‘다섯 가지 교리’를 다음과 같이 제정했습니다.

  1. 전적 타락
  2. 무조건적 선택
  3. 제한 속죄
  4. 불가항력적 은혜
  5. 성도의 견인

오늘날 이 문서는 ‘도르트 신경’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진리는 참으로 중요하고 유익하므로 성도라면 예외 없이 정확하게 공부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훗날 이 다섯 가지 교리에 대해 ‘칼빈주의 5대 교리’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는데, 물론 존 칼빈은 이미 54년 전에 죽었으므로(1564년) 도르트 총회에 참석하였던 것은 아닙니다. 칼빈주의 5대 교리의 신학은 하나님께서 무상으로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주권을 잘 고백한 신학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 알미니안주의 신학이 대부분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에 의해 받아 들여지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참으로 우려할만한 상황인데 이는 구원이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는 철두철미 ‘인본주의 신학’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53번 문답으로 돌아가겠는데, 핵심은 성신께서 선택된 각인에게 개별적으로 베풀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성신께서는 참 믿음의 끈 역할을 하셔서 성도와 그리스도 간의 연합을 이루십니다. 바로 이 ‘신비적 연합’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모든 구원의 은덕들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 은덕의 혜택에는 갈라디아서 5:22-23의 목록에 있는 ‘성신의 열매들’도 포함됩니다.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도 예외 없이 그리스도의 영을 받았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롬 8:9). 그러므로 기독교 신자에게서의 성신은, 그를 성화시키시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거룩하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원인이 됩니다. 실상이 이러하므로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성신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엡 4:30)고 한 명령이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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