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06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8주차(46-49문답)

[제46문] ‘하늘에 오르셨고’라는 말로 우리는 무엇을 고백합니까? [대답] 그리스도는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땅에서 하늘로 오르셨고(막 16:19; 눅 24:51; 행 1:9),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거기에 계시며(롬 8:34; 엡 4:10; 골 3:1; 히 4:14; 7:24-25; 9:24), 장차 살아 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마 24:30; 행 1:11). 

예수님의 높아지심의 두 번째 단계는 부활 후 40일째 감람원으로부터 하늘로 승천하신 일입니다(행 1장). 사도신경의 다섯 번째 내용의 첫 번째 부분은 ‘하늘로 오르셨고’인데, 신앙고백문답은 제46, 47, 48, 49문답에서 이에 관해 설명합니다. 이곳의 문답에서는 승천하신 사실이 특별히 강조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감람원에서 공중으로 승천하신 사실은 사도들이 증언하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부활 후 40일 동안 세상에 계셨던 이유는, 첫째, 제자들에게 자신의 살아나심을 여러 방면으로 증거하기 위해서이고(행 1:2), 둘째, 전에는 그들에게 이치에 맞지 않았을 예수님의 사역을 계속 수행케 하기 위한 마지막 지시를 내리기 위해서입니다.  

이 명령들은, 첫째, 예수께서 보내실 그의 성신의 능력에 의해 그의 증인이 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는 것(행 1:4, 8), 둘째, 부활과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증인의 사명자가 되어 온 세상으로 가라는 것(행 1:4, 8), 셋째,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침으로써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것(마 28:19-20) 등입니다.

그런 다음 예루살렘 근처 감람산에 모였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손을 들어 제자들을 축복하셨고, 그리고 그렇게 축복하시면서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리우셨습니다(눅 24:50-51). 그러므로 향후 예수님은 부활의 육체를 지니신 채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시고 하늘에 계시게 되었습니다(마 28:18). 하지만 장차 그리스께서는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을 그 시간’에 다시 올 것입니다.

[제47문] 그렇다면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는 그리스도의 약속은 어떻게 됩니까(마 28:20)? [대답] 그리스도는 참 인간이고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인성으로는 더 이상 세상에 계시지 않으나(마 26:11; 요 16:28; 17:11; 행 3:21; 히 8:4), 그의 신성과 위엄과 은혜와 성신으로는 잠시도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마 28:20; 요 14:16-18; 16:13; 엡 4:8, 11).

이번 문답과 다음 문답에서는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라고 말씀하신 것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육체적으로 함께 하시겠다는 의미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명백하게도 이 말씀을 마친 잠시 후에 예수께서는 지상을 떠나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런데 루터교 친구들은 예수님께서는 아직까지 인성으로 지상에 계신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실제로 받아 들인 때문이고, 그렇게 한 이유는 주님의 만찬 때 예수의 살과 피가 실제로 임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주님의 만찬에 대해 이러한 견해를 갖는 것은, 예수의 인성이 신성(하나님)으로 바뀌었고 그에 따라 지금 현재는 어디든지 계신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만찬을 거행하는 그 시간에 예수님의 육체와 피는 실제로 현재 런던에도 있고 동시에 뉴욕 기타 등등에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루터교의 교리에 대해 성경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께서 영광 받으신 인성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그대로 인성인 것이고, 그러므로 지구상 어디든지 계신다거나 혹은 성찬식의 음식으로 먹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오직 하늘에만 계시지, 지금과도 같은 이 지상에 계시지는 않습니다. 요한복음 13:1; 16:7, 28; 사도행전 3:21을 포함한 많은 곳에서 이 사실을 증거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여전히 그의 신성, 위엄, 은혜 그리고 성신으로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은혜는 성신으로 인하여 믿는 자들에게 성경을 통해 계속해서 드러내 보이십니다. 성신님은 지상에 있는 교회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시고, 우리의 영원한 위로자이십니다.

[제48문] 그런데 그리스도의 신성이 있는 곳마다 인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의 두 본성이 서로 나뉜다는 것입니까? [대답]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신성은 아무 곳에도 갇히지 않고 어디나 계십니다(사 66:1; 렘 23:23-24; 행 7:49; 17:27-28). 그러므로 신성은 그가 취하신 인성을 초월함이 분명하며, 그러나 동시에 인성 안에 거하시고 인격적으로 결합되어 있습니다(마 28:6; 요 3:13; 11:15; 골 2:9). 

앞에서 설명한 관점을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인성은 하늘 한 장소에만 계시지만 그의 신성은 ‘어디든지 존재’하고 ‘동시에 모든 장소에 존재’하시는데, 그렇다면 이것의 의미는 두 본성이 이제 서로 나뉜다는 것입니까? 아마도 루터교도들은 우리가 성찬식에 물리적인 육체로 참여하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신성과 분리되어 인간의 몸을 입고 하늘에 계신 구세주를 믿는 우리를 잘못되었다면서 고소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진상이 아닙니다. 어디든지 존재하는 신성은 역시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인성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사실 죽은 후 삼일 동안 그의 영혼이 천국에 있을 때에도, 무덤에서 예수의 죽은 몸이 누워있을 때에도 신성은 변함없이 인성과 결합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 두 본성은 인격적으로 서로가 영원히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두 성품의 위치에 대한 문제와 관련한 개혁주의자들의 성격적 이해는 초대교회 교부들 역시 장소로 택했던 바를 따릅니다. 실제로 유명한 기독교 선생이었던 어거스틴(430 사망)도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의 인성을 존중하되 그가 어디에든지 방출되었다는 식으로 상상해서도 안 됩니다. 자신의 인성의 실체를 파괴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의 신성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심지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도 어디든지 존재하는 자신의 신성이므로, 하늘에 있는 그의 인성을 생각하면, 하나님(신성)과 사람(인성) 모두는 하나로 구성됩니다. 그리스도 예수일지라도 한쪽이 현재 어디든 계시는 그의 신성과 관계를 맺지만, 그러나 하늘에서는 그의 인성과 관계를 맺습니다. 이 사실은 이 조항의 단순한 이해에 따른 기독교 교회의 신앙고백입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개혁주의자들의 성경 해석에서 도움을 얻고 아울러 초대교회의 지원을 받습니다. 이 문답은 그리스도께서는 참되시고 살아있는 하나님이심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든 속성(성품)을 다 지녔습니다. 예를 들면, 전능하심(그는 모든 능력을 가졌습니다), 전지하심(그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리고 편재하심(그는 언제든지 어느 곳에든지 계십니다) 기타 등등입니다. 동시에 우리 주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신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필히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용서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성신과 말씀에 의해 우리의 조력자, 우리의 인도자, 우리의 주님, 그리고 우리의 구주로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마련입니다. 외롭거나, 힘들거나, 슬플 때, 항상 이것을 기억합시다.

[제49문]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오르심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대답] 첫째, 우리의 대언자로서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그의 아버지 앞에서 간구하십니다(롬 8:34; 요일 2:1). 둘째,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있게 되었는데(엡 2:6), 이것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지체인 우리를 그에게로 이끌어 올리실 것에 대한 확실한 보증입니다(요 14:2-3; 17:24; 엡 2:4-6). 셋째, 그리스도께서는 그에 대한 보증으로 그의 성신을 우리에게 보내시며(요 14:16; 16:7; 행 2:33; 고후 1:22; 5:5), 우리는 성신의 능력에 의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곳인 위의 것을 구하고 땅의 것을 구하지 않습니다(빌 3:20; 골 3:1-4). 

제49문답은 우리의 구주께서 하늘로 오르셨기에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는 세 가지의 경이로운 유익을 가르칩니다.

첫째,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언자이십니다. ‘대언자’는 변호사로서 재판 전에 그의 친구를 위하여 간청하는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7:25에서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아버지 앞에서 그리스도는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의 대언자이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우리 편에서 그의 희생을 앞세워 간청하십니다. 그러므로 요한일서 2:1에서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의 가치는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 역시 오직 우리의 대언자인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아버지께 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게 되었다는 것과 하늘에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항상 대언자가 계시다는 데 대한 감사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승천은 장차 우리도 그렇게 승천할 것에 대한 확실한 보증입니다. 그의 성신에 의해 우리는 그리스도께 영원히 연합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인간의 본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장차 우리의 육체 역시 하늘로 끌려 올라갈 것을 보증합니다. 먼저 우리의 영혼이 가게 될 것이고 다음으로 우리의 몸도 따라갈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 역시 하늘로 갈 것이라는 것과 그곳은 몸과 영혼이 함께 거하는 장소라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항상 생각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집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승천을 통해, 이후로 택한 자들에게 그의 성신을 보내시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성신과 복음을 개심한 자와 그의 신령한 택한 자들에게 보내십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써 구속된 사람들은 성신에 의해 부름을 받습니다. 성신께서는 중생, 믿음, 회개, 성화의 은사를 일종의 보증으로서 베푸십니다. ‘보증금’은 ‘계약금’을 의미합니다. 성신의 선물은 일종의 ‘계약금’이 지불된 것과도 같으며, 따라서 우리가 영원한 구원을 미리 경험해 보는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이 죄된 세상에 사는 동안은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갈망하고 그리고 좀 더 그처럼 성장하기를 갈망케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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