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22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6주차(40-44문답)

[제40문] 그리스도는 왜 ‘죽으시기’까지 낮아져야 했습니까? [대답]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 때문에(창 2:17) 우리의 죄의 대가는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 이외에 달리 치를 길이 없습니다(롬 8:3-4; 빌 2:8; 히 2:9, 14-15). 

이 문답에서는 그리스도의 인성의 세 번째 단계인 그의 죽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겪으신 엄청난 고통은 그것만으로도 하나님을 만족 시키기 충분하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 예수께서는 실제로 죽으셔야만 했습니까? 대답은 성경 전체에서 발견되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범죄하는 영혼은 죽으리라”(겔 18:4, 20).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기타 등등. 성경에서 현세에서는 죽음 그 자체보다 적은 형량이 없다는 것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법과 공의의 요구가 어느 정도인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창 2:17).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떠맡으신 입장이셨으므로 당연히 죽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천하 인간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죄 없는 인성은 죽음과는 유일하게 상관없으셨지만, 몸으로부터 영혼이 분리되는 물리적인 죽음으로서의 엄중하게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외치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우리의 죄의 삯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드님의 죽음 밖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졌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제41문] 그리스도는 왜 ‘장사’되셨습니까? [대답] 그리스도의 장사되심은 그가 진정으로 죽으셨음을 확증합니다(사 53:9; 마 27:56-60; 눅 23:53; 요 19:40-42; 행 13:29; 고전 15:3-4).

이 짧은 질문과 대답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장사(그의 인성의 4번째 단계)되신 이유를 배웁니다. 여기서 제시하는 이유는, 장사는 그리스도께서 확실하게 죽으셨다는 것을 증거해주기 때문으로 오직 죽은 사람만 장사를 지내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이 같은 증거가 그렇게도 중요한 것입니까? 예수께서 진짜 죽은 것이 아니라는 거짓 주장들이 만들어지고 퍼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거짓들 중 하나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단지 의식을 잃었을 뿐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거짓은 예수님께서는 단지 죽은 척 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장사되신 것은 정말로 죽으셨기 때문이고, 게다가 권세자들의 허락을 받아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로마 병사는 자신의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고, 그래서 피와 물이 쏟아졌습니다(요 19:33-34).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죽임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그리스도의 장사되심은 하나님에 의해 육체 위에 저주가 임한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책망하면서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창 3:19)고 말씀하신 바대로 입니다. 그리스도의 육체는 우리를 위하여 삼일 동안 무덤에 있으면서 부패되는 과정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죽은 뒤에 장사되는 것은 우리 구주의 장사를 힘입어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육체가 썩어져 흙으로 다시 돌아간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축복된 부활로 인하여 무덤에서의 부패를 벗어나 부활의 승리를 맞게 될 것입니다. 어두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확실하게 사라졌습니다. 바울은 감격에 겨워 “사망이 이김이 삼킴 바 되리라”(고전 15:54)고 선포했습니다.

[제42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는데 우리도 왜 여전히 죽어야 합니까? [대답] 우리의 죽음은 자기 죄값을 치르는 것이 아니며(시 49:7-8), 단지 죄짓는 것을 그치고 영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요 5:24; 롬 7:24-25; 빌 1:23; 살전 5:10).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 제42문답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배울 때, 흔히 구도자들이 물어오는 공통된 질문에 답합니다. 질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는데, 우리는 왜 여전히 죽어야 합니까?”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 두 부분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믿는 자들의 죽음은 죄값을 치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의 의미는 성도들의 경우 죽음은 죄에 대한 심판으로 하나님의 저주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 6:23). 그러나 크리스천들의 죗값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미 치러졌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위한 ‘삯’ 또는 ‘대가’를 만족시켰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의 죽음은 자신의 죄에 대한 징계가 아닙니다. 그에게 속해 있는 모든 죄를 예수께서 거두어 가셨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저주로 연상되는데,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 받으신 우리 구주의 죽음으로 인하여 더 이상 저주로서의 죽음은 모든 믿음의 크리스천들로부터 관계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실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도다”(갈 3:13)라고 외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음으로, 긍정적인 대답으로, 믿는 자들의 죽음은 그의 영혼이 천국으로 인도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육체적 죽음에 의해 크리스천은 이 죄된 세상과 죄의 본성으로부터 영원한 영광으로 옮겨집니다. 성경은 성도가 죽음을 통해 육체를 떠난다는 것은 주님과 함께 거한다는 의미이고(고후 5:6-8), 따라서 죽는 것은 유익하다고 분명히 가르칩니다(빌 1:21). 우리는 크리스천이므로 죽음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에 대한 경험은, 사실은 저주로부터 축복으로 바뀌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죄된 육체로 영원히 살도록 허락하지 않으신 하나님은 얼마나 은혜로우십니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의 죄된 삶이란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크리스천들은 육체적으로는 반드시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들이 계속 지상에서 살게 될 것인데, 그들이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경우, 그들은 죽음을 겪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 자신의 때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면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변화되는 사람들 속에 속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살전 4:17).

[제43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제사와 죽으심에서 우리가 받는 또 다른 유익은 무엇입니까? [대답]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공효로 우리의 옛사람이 그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고 죽고 장사되며(롬 6:6; 갈 2:20; 골 2:11-12), 그럼으로써 육신의 소욕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되고(롬 6:8, 11-12), 오히려 우리 자신을 그분께 감사의 제물로 드리게 됩니다(롬 12:1).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었습니다. 그의 고귀한 죽음으로 우리는 곱절의 정결함과 함께 모든 죄로부터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우리의 죄로 인한 유죄로부터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칭의입니다. 둘째, 우리는 우리 죄의 권세로부터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성화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43문답은 우리 구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형벌로 죽임을 당하셨을 때, 우리의 심령 안에 우리를 위하여 죄의 권세를 부수는 성신을 선물로 보내셨다는 사실을 가르칩니다. 이 문답은 로마서 6:1-13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단순히 우리의 죗값만을 치르기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고, 죄스러운 정욕과 욕구의 권세까지도 마비시키셨음을 깨닫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즉, 예수님은 성신의 힘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우리의 마음을 청결하게 만들기 위해서도 죽으신 것입니다.

‘옛 사람’이라는 표현은 우리 안에 있는 아담으로부터 이어받은 죄의 권세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옛 사람’은 거듭나기 전의 우리를 지배하고 주장하는 권세로서 죄의 실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 죽음, 그리고 장사로 우리의 마음에 좌정해 있던 죄의 권세는 성신님에 의해 죽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고(롬 6:6; 갈 2:20), 그리고 함께 장사되었고(롬 6:4), 그리고 그와 함께 부활했다고 선포합니다(골 3:1). 다른 말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그리고 부활되셨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동일한 경험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영의 능력 안에서 우리 삶에서의 죄의 권세와 불신이 벗겨졌고 대신 부활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이 놀라운 성화의 특혜를 즐깁니다.

성신에 의해 중생할 때, 우리는 이후로 감사와 순종의 거룩한 삶을 살게 되고, 사랑 안에서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드리는 소망과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성화의 선물(거룩한 소망과 삶의 변화)과 칭의의 선물(죄의 용서와 지옥으로부터의 구출)에 대하여 얼마나 감사하는 사람입니까?

[제44문] ‘음부에 내려가셨으며’라는 말이 왜 덧붙여져 있습니까?  [대답] 우리가 큰 고통과 중대한 시험을 당할 때에도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지옥의 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 구원하셨음을 확신하고 거기에서 풍성한 위로를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사 53:5). 그분은 그의 모든 고난을 통하여 특히 십자가에서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아픔과 공포와 지옥의 고통을 친히 당하시므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사 18:5-6; 116:3; 마 26:38; 27:46; 히 5:7).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다섯 번째 단계와 마지막 단계에 와 있습니다(우리는 아직 사도신경의 네 번째 단락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그리스도께서 “음부에 내려가셨으며”라고 고백하되, 이것을 로마 가톨릭 교회나 루터교와는 다른 방법으로 해석했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예수께서 실제로 지옥에 내려가셔서 삼 일간 고통을 받으시고 난 후, 앞서 죽은 구약시대 신자들을 천국으로 데리고 가셨다는 해석을 취합니다. 루터교는 예수님의 영혼이 지옥에 내려 갔기에 고통은 없었지만 그의 원수들에게 그의 승리를 선포했다고 말합니다. 개혁교회의 견해(성경적 견해)는 죽음 이후 즉각적으로 예수님의 영혼은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른 편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기억합시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6). 동일하게 그가 아버지께 말했습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그렇다면 이 부분은 무슨 의미입니까? 신앙고백문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와 바로 직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번민하셨을 때, 사실상 전체 인격으로서 극심한 지옥의 고통까지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 누구도 우리를 위하여 예수께서 받으신 지옥 고통을 견딜 수는 없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쳤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지옥 가장 깊은 곳에서 외친 것입니다. 일개 피조물로서는 도저히 감당치 못할 하나님의 엄청난 진노를 그리스도께서는 받으시되 넘치도록 겪으셨던 것입니다. 한 번 그와 같은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다.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 모두가 마땅히 치러야 할 지옥의 극심한 고통을 당했습니다. 십자가 위해서 6시간 동안 매달려 있는 시간에도 역시 그러하셨습니다. 숨이 끊어지는 죽음으로써만이 비로소 그의 “음부(지옥)에 내려가시고”라고 한 ‘지옥의 고통’은 끝이 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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