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15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5주차(37-39문답)

[제37문] “고난을 받으사”라는 말로 우리는 무엇을 고백합니까? [대답]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사셨던 모든 기간에, 특히 생의 마지막 시기에 모든 인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자신의 몸과 영혼에 짊어지셨습니다(사 53:4, 12; 딤전 2:6; 벧전 2:24; 3:18). 그분은 유일한 화목제물로 고난을 당함으로써(사 53:10; 롬 3:25; 고전 5:7; 엡 5:2; 히 9:28; 10:14; 요일 2:2; 4:10), 우리의 몸과 영혼을 영원한 저주로부터 구원하셨고(롬 8:1-4; 갈 3:13; 골 1:13; 히 9:12; 벧전 1:18-19),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은혜와 의와 영원한 생명을 얻으셨습니다(요 3:16; 6:51; 롬 3:24-26; 고후 5:21; 히 9:15; 10:19).

신앙고백문답 제37문답부터 39문답까지는 우리 주님의 인성의 두 번째 단계를 설명합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주님께서 겪으신 고난입니다. 이 문답과 함께 우리는 사도신경의 네 번째 단락의 공부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에, 지옥에 내려가시고.” 우리는 신앙고백문답 제44문답까지에 걸쳐 신조의 이 네 번째 단락을 살펴볼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막중한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고난이 무엇인가를 대충 압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랜 기간 동안 질병으로 인한 고난의 침대에 누워 있었던 기억을 생각하면서 엄청난 분량의 육체적 고난에 관하여 진절머리를 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육체적 고난 못지않은 극도의 정신적 고난을 경험하는데, 그들의 생활 속에 침투한 비극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들은 견딜 수 없는 괴로움으로 인하여 심지어 자살하기까지 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우리 주님의 생애는 전생애 동안 육체는 물론이고 특별히 영혼도 고난으로 점철되었습니다. 이러한 고난은 자신에게 정해진 결정적 희생의 시간이 오기까지 엄청나게 커갔습니다. 최종적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의 영혼은 거의 부풀어 터질 듯했습니다(눅 22:39-46). 주님의 육체는 채찍에 맞으셨고, 십자가에 달리되, 손과 발은 못에 박혀, 그야말로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으리 만큼의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모진 고난에 처해지신 예수님의 고난은 그야말로 전적으로 무고한 것이어서, 고난 받아 마땅한 죄인들이 의당히 받는 고난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슨 이유로 이 모든 고난을 겪으셔야 했습니까? 신앙고백문답의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첫째, 그가 받으신 고난은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진노’가 예수님의 육체와 영혼에 직접적으로 가해졌습니다. 둘째, 하지만, 그가 받으신 고난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었고 순전히 우리 자신의 죄에 대한 징계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택하신 사람들의 모든 죄값에 대해 예수님께 대신 형벌을 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할 고난과 죽음을 대신 담당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예수님께서 ‘대속 제물’이 되어 주셨음에 따라 두 가지 놀라운 축복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했습니다. 첫째, ‘영원한 하나님의 저주로부터’ 벗어나는 완벽한 구원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 의, 그리고 영생’ 등이 저주를 벗어난 사람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모든 인류’라고 한 데 대해서는 좀 더 설명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신앙고백문답에서 하나님께서는 오직 당신께서 선택하신 자신의 교회만을 위해서 구원 계획을 갖고 계시다는 데 대해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이, 선택 받았던 선택 받지 아니했던지 상관없이, 그렇게 모든 사람들을 위한 대속제물이었다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여기서 ‘모든 인류’라는 표현은 시대 전체를 관통하여 택함 받은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신앙고백문답의 나머지 부분에서 과연 예수님께서는 누구를 위해 죽으셨는지가 아주 확실해집니다. 은혜와 의와 생명을 선물로 받은 ‘우리를 위하여’이지, 그렇지 아니한 다른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에 대한 대가 때문에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하고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일부 신학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죽으셨다면서, 결국 모든 인류에게 구원이 임한다고 하는 ‘우주적 속죄’를 가르칩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왜 잘못되었습니까? 요한일서 2:2에서는 무엇을 가르칩니까?

[제38문] 그리스도님은 왜 재판장 ‘본디오 빌라도 아래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까? [대답] 그리스도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세상의 재판장에게 정죄를 받으셨으며(마 27:24; 눅 23:13-15; 요 18:38; 19:4, 11), 이로써 우리에게 임할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사 53:4-5; 고후 5:21; 갈 3:13).

비교적 짧은 신조에 속하는 사도신경에는 하나님 외에 두 사람의 이름을 더 거론합니다.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와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한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왜 이같이 대역죄인의 이름이 거론되었습니까? 이유는 이렇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거짓으로 예수님을 모함하여 고소했을 때, 예수님의 재판에 책임을 진 재판장이었습니다. 빌라도는 로마의 황제 시저가 임명하였는데, 따라서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빌라도가 주관한 재판의 배후에는, 사실상 세상 정부의 권위와 하나님 자신의 권위가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을 적대시하는 거짓 증언들을 들게 되었을 때, 빌라도는 처음에는 예수님의 무죄와 결백을 선언했습니다(눅 23:4, 14; 요 19:4). 세상 정부의 권한과 판단으로도 예수님께는 죄가 없으시다는 것이 명백히 선언된 것이었습니다. 그런 결정은 뒤집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범죄도 짓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로 빌라도는 결국에는 예수님을 범죄자처럼 다루어 병사들에게 넘겨버렸습니다(눅 23:24-25). 그래서 세상 권력은 예수님께는 죄가 없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사형을 선고한 것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한 로마 정부의 권력 뒤에는 사실상 하나님의 권세가 작용하고 있었습니다(롬 13:1-2).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결백을 빌라도를 통하여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어서 당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백성의 구속을 위한 죄를 품고 있으셨기 때문에 빌라도를 통하여 사형을 선고 받게 하셨습니다. 당시 빌라도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유죄선고를 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결백한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고한 빌라도의 전도된 행동은 아주 ‘사악한 범죄’였던 것입니다. 결국 당시 세상의 대표이던 로마 정부가 예수님을 죽인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자신 스스로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임에 다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가해진 이와 같은 비정상적인 재판, 즉 결백한 분이신 예수님께서 정죄를 받으심으로써 이제 교회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예수님을 정죄함으로써 이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39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다른 방식으로 돌아가신 것보다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까? [대답] 그렇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이므로(신 21:23),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이 내게 임한 저주를 대신 받은 것이라고 확신합니다(갈 3:13). 

이 질문은 더 나아가서 신앙고백문답 제38문답에서 제시한 생각을 설명하는데, 즉 그리스도의 죽음은 일반적인 죽음이 아닌, 법적 사형집행 방식인 십자가형이어야만 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로마의 사형제도인 십자가에 못박혀 끔찍하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로마의 십자가형(두 개의 나무를 못으로 박아 십자가를 만든)으로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셨을 때, 그러한 형식의 사형집행은 구약의 저주를 성취한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21:22-23에 의하면, 치욕을 가하기 위해 범죄자의 시신(유대인의 사형집행은 돌로 죽이는 방식입니다)을 나무에 매달았습니다. 그러한 방식은 사람들에게 그가 법을 어긴 대가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었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육체는 치욕을 당하시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저주가 그 위에 임해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받아야 하는 모든 저주와 하나님의 심판을 자신이 스스로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에 빠져 죽으시던지, 아니면 독이 든 음식에 의해 죽으시던지, 혹은 늙어서 죽으시던지, 또는 다른 방법으로 자연사하셨다면, 그러한 죽음은 우리의 죄를 위한 징계인 하나님의 저주가 될 수 없었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에게 명백히 죽음의 형벌을 집행하신 것을 발견합니다. 오늘날 사형 제도는 비도덕적이므로 확실히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바보 같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의가 인간의 죄를 얼마나 미워하는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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