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2일(THUR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1주차(29-30문답)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하나뿐이신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참으로 확실하고도 놀라운 구원과 안전을 제공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사람들은 그들의 구원과 안전을 다른 곳에서 찾고자 합니다. 아니면 부분적으로는 예수님을 믿되 동시에 자기 자신이나 또는 다른 무언가도 신뢰하고 싶어합니다. 이 교리문답이 쓰여졌을 당시에는 몇 세기 동안이나 이어져온 잘못된 가르침들이 성행했습니다. 그런 가르침의 일부는 구원에 관한 도움을 받으려고 성자들을 의지하는 것 또한 포함되어있었습니다. 성자들은 나름 의로운 삶을 살다가 죽은 사람들이긴 합니다. 하지만 거짓교리에서는 그러한 성자들을 필요 이상으로 의로운 삶을 살았다고 과장합니다. 그때는 사람들이 특정한 성자를 기리기 위해 관련 교회를 순례하곤 하였는데, 그러한 의식을 행하면 생전에 그 성자가 행했던 의의 여분이 자신들의 몫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그 누구도 하나님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의로울 수 없다고 성경이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 의로운 정도가 예사롭지 않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도 남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를 나누어 줄 수 있을만한 사람은 더더욱 있을 수도 없습니다. 로마서 3장 9절로 12절을 읽어보십시오. 오직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즉 예수님의 의만이 우리의 의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예수님의 완전한 의로움으로 인하여 우리가 의롭게 여겨질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다른 누구의 의로움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또한 그러한 성자들에게 소원을 빌기도 했는데, 특히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그랬습니다. 사람들은, 성자들이야말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인 까닭에 우리의 필요를 이해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구함에 있어서도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성자들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중재해 줄 수 있거나, 아니면 도리어 사이를 갈라놓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참으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셨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완벽히 이해하시는 까닭은, 자신이 인간으로서 그러한 필요들을 우리와 똑같이 경험해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유일한 중재인이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오직 그분 한 분 뿐입니다. 히브리서 2장 17절로 18절과 디모데전서 2장 5절을 읽어보십시오. 성자들의 도움을 보태는 태도로 예수님을 믿으려 하는 것은 예수님을 진실로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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