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11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0주차(27-28문답)

[질문] 하나님의 섭리란 무엇입니까? [대답] 섭리란 하나님의 전능하고 언제 어디나 미치는 능력으로(시 94:9-10; 사 29:15-16; 렘 23:23-24; 겔 8:12; 마 17:27; 행 17:25-28), 하나님께서 마치 자신의 손으로 하듯이,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여전히 보존하고 다스리시는 것입니다(히 1:3). 그리하여 잎새와 풀, 비와 가뭄(렘 5:24; 행 14:17), 풍년과 흉년, 먹을 것과 마실 것, 건강과 질병, 부와 가난, 참으로 이 모든 것이(잠 22:2; 요 9:3) 우연이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그의 손길로 우리에게 임합니다(잠 16:33; 마 10:29-30). 

제27문답과 28문답에서는 ‘하나님의 창조 교리’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된 ‘하나님의 섭리 교리’를 고백합니다. 창조론은 하나님께서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창조한 분이시라는 데 대한 고백입니다. 창조는 단 한 번에 진행되었는데, 6일 동안에 걸쳐 모든 것들이 연속적으로 한 번에 실행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한 모든 것들을 돌보시는데,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틴어에서 온 이 섭리라는 단어는 ‘그전에 보는 것’이라는 뜻)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는 창조 사역을 돌보고, 통치하고 그리고 보존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섭리란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으로써 창조하신 모든 것들이 무가치하게 되거나 소멸되는 상황에 처해지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지키고 보존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섭리 교리는 창조 교리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영역에는 당연히 죄와 악도 포함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죄와 악을 자신의 영원한 계획 속에 포함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그들을 사용하지 않으셨다면, 그것들은 결코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하나님의 섭리와 심판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암 3:6), 하나님께서는 죄를 항상 미워하신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신 25:16).

이 우주 안에서는 비록 급작스럽게 발생하는 사고라 할지라도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란 하나도 없고, 아무리 세세한 부분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로써 다스려집니다. 수많은 별이 뿌려져 있는 광대한 하늘 세계로부터 시작하여 현미경으로도 보기 힘든 가장 작은 원자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지배됩니다. 우리의 삶도 우연한 운명이나 행운 혹은 운수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통치에 절대적으로 종속되어 있습니다(마 10:29-31).

만약 하나님께서 6일 동안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다면, 그리고 창조 사역을 완전히 끝내셨다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가령, 기적이란 창조 사역 혹은 섭리 사역 중에 무엇에 속하는 것일까?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하나님이 부르심에 따라 물질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기적의 일종인데, 마치 과부를 위해 생겨난 기름(왕상 17:8; 왕하 4:1)의 경우나 5000명을 먹였던 음식의 경우처럼(요 6장),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추가된 창조 사역을 보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중력을 비롯하여 기타 등등에 대해 통상 ‘자연법칙’이라고 표현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러한 법칙들을 제정하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고 나아가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에는 언제라도 필요 없게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기적 그 자체에 대해서는 기대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사랑의 섭리로써 우리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든지 기대할 수 있습니다(마 6:33; 딤전 4:8).

 

[질문] 우리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섭리로써 여전히 보존하심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어떤 것입니까? [대답] 우리는 어떤 역경에서도 인내하고(욥 1:21-22; 시 39:9; 롬 5:4-5; 약 1:3), 형통할 때에 감사하며(신 8:10; 살전 5:18), 또한 장래 일에 대해서도 우리의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굳게 신뢰하여 어떠한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확신합니다(시 55:22; 롬 5:4-5; 8:38-39). 모든 피조물이 예외 없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여 일어나거나 되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욥 1:12; 2:6; 잠 21:1; 행 17:25-28).

사도신경의 첫 번째 조항의 마지막 문답인 제28문답은 하나님의 백성을 모든 것들의 주관자이시고 공급자이시고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아는 데서 얻게 되는 위로에로 안내합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모든 것의 생과 사를 주관하시는 것을 의미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우리의 생활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칩니다. 통상 여기서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세 가지 기독교인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역경 가운데서 인내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번창하는 일에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미래에 대하여 확실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시므로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거나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언제나 우리를 영원한 선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으로 우리를 이끌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피조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여기서 ‘피조물’은 동물, 인간, 혹은 천사처럼 살아 있거나 그렇지 않는 모든 창조된 것들을 가리킵니다. 하늘에 있는 태양이 되었던지 혹은 사람의 마음에 있는 생각이 되었던지 간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의지로부터 분리 혹은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진리는 우리가 어떤 특별한 고통이나 어려움 혹은 슬픔에 처할 때라 할지라도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축복이 된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살아 있는 것들, 즉 인간 등과 같이 생각하는 피조물은 자신의 전적으로 자유로운 의지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우리는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습니까? 물론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은 서로 독립되고 분리되어 있는 것이겠습니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입니다. 하나님의 ‘은밀한 의지’, 혹은 ‘예정된 의지’와 섭리는 다른 모든 피조물의 의지까지도 통치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뜻 또는 의지는 인간 의지의 모든 행위들 속에서도 항상 이루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죄를 짓는다 할지라도,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을 때에도, 그것들은 사실상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행 2:23; 4:26, 28).

이것이 인간의 이해에는 신비의 영역이지만, 여하튼 하나님의 뜻이 없이는 어떤 것도, 어떤 경우에도 아주 작은 점의 점만큼도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잠언 19:21과 사도행전 17:28을 봅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의지)에 관해서는 또 다른 설명도 있는데, 하나님의 ‘계시된 의지’, 혹은 하나님의 ‘명령된 의지’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두 번째 하나님의 의지 또는 뜻도 결코 죄인에 의해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정된 의지(은밀한 의지)’와 ‘계시된 의지(명령된 의지)’ 등의 두 가지의 하나님의 의지가 있음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둘의 신비한 관계에 대해서는 결코 충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신 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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