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9월 20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07주차(20-23문답)

[제20문] 그러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멸망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까? [대답] 아닙니다(마 7:14; 22:14).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어 그의 모든 은덕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만 구원을 받습니다(시 2:12; 막 16:16; 요 1:12-13; 3:16, 18, 36; 롬 3:22; 11:20; 히 4:2-3; 5:9; 10:39; 11:6).

다음에 이어지는 세 개의 신앙고백문답(제20, 21, 22문답)은 ‘우리의 구속에서의 믿음의 위치’에 대해 말합니다. 제12문답부터 제19문답을 통해서 우리의 죄와 사탄으로부터의 구속, 곧 하나님의 율법의 저주와 마땅히 치러져야 할 처벌로부터 우리의 처지를 대신해주시는 대리자의 의미를 살펴 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누가 진정한 대리자인가를 보았는데, 그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와 같은 죽음에 의해 모든 사람, 곧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지금까지의 오랜 인간 역사 속에서 살아온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서 구원자가 되어주신 것입니까?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실족된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을 받습니까?

대답은 단호하게 ‘아니다!’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을 위한 보편적 구원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늘날 아담 안에서 실족된 사람은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다 구원 받는다고 가르치는 ‘만인 구원설’은 대중적입니다. (우리는 현대주의와 보편주의 둘 다 주의해야 합니다.) 진리는 아담 안에 속한 모든 자들은 죽을 것이고, 아담으로부터 그리스도께 속해진 모든 사람이 살 것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고전 15:22).

이 문답은 믿음의 필요성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그리스도와 우리의 영혼들 사이의 ‘연결 고리’는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부터 떨어지면, 그리스도의 속죄의 구원하는 유익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영적인 손과 같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기 위하여 뻗게 해주고 그를 붙잡고 매달리게 해줍니다. 이 문답에서 또한 다른 중요한 문제들도 주목합시다.

첫째, 믿음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지명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은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성신님의 선물입니다(엡 2:8).

둘째, 사람은 스스로 그리스도께 접붙여질 수 없고 하나님에 의해서만 접붙여집니다. 기억하십시오. 농부가 가지를 나무에 접붙입니다. 가지가 스스로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성신께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된 믿음을 주시므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들여놓습니다.

셋째, 그리스도 안으로의 접붙임은 성신에 의해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에 대한 결과로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생명을 끝임 없이 공급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살아 있는 믿음을 통해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모든 유익을 공급받습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매 순간마다 우리에게 그의 생명과 은혜를 제공하기에, 우리의 믿음은 ‘파이프 라인’이나 ‘손’ 같을 수 있습니다.

‘포도나무’인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한 그러한 ‘가지들’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요 15:1-8). 성신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참된 믿음이 없이는, 우리는 아담에게 연합되어 있을 뿐이어서 죽음에 처해 있는 죽은 가지일 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아담의 나무로부터 우리를 옮겨 그리스도의 생명의 나무로 연합시키는 것은 ‘교회원 증서’가 아니라 ‘참된 믿음’입니다.

[제21문] 참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대답]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이 진리라고 여기는 확실한 지식이며(요 17:3; 롬 4:20-21; 히 11:1, 3; 약 1:6), 동시에 성신께서(마 16:17; 3:5; 행 16:14; 고후 4:13; 빌 1:19) 복음으로(막 16:15; 행 10:44; 16:14; 롬 1:16; 10:17; 고전 1:21) 내 마음속에 일으키신 굳은 신뢰입니다(시 9:10; 롬 4:16-21; 10:10; 엡 3:12; 히 4:16). 곧 순전히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하나님께서 죄 사함과 영원한 의로움과 구원을(눅 1:77-78; 요 20:31; 행 10:43; 롬 3:24; 5:19; 갈 2:16; 엡 2:8; 히 10:10)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나에게도 주심을(딤후 4:8) 믿는 것입니다(합 2:4; 롬 1:17; 갈 3:11; 히 10:38). 

제20문답에서는 믿음의 필수성에 대해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참된 믿음의 성격에 대해 배우겠습니다. 이 주제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이 많으므로, 성경이 믿음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치는지를 바르게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전혀 참되이 믿는 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믿음의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문제로 사탄이 우리를 속이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개혁신학자들(성경학자)은 성경에서 세 가지의 가짜 혹은 거짓 믿음을 찾아냈습니다. 참된 믿음을 묘사하는 제21문답을 살펴보기 전에, 우리 자신이 속지 않기 위하여 이 세 가지 종류의 거짓 믿음에 대하여 간단히 언급해 보겠습니다.

첫째, 역사적 믿음이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성경의 사건들을 진리로 조금만 받아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로서는 예수님은 살았던 분이시고, 기적을 행하신 분이시다는 등등을 믿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는 개인적으로 그리스도께 기도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기 위한 은혜도 구하지 않으며, 따라서 어떤 면으로든 그리스도를 실제로 신뢰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탄이나 귀신들도 이런 종류의 믿음은 가지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5:6-10; 야고보서 2:19을 봅시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내용들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구원받은 것은 아닙니다.

둘째, 일시적 믿음이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처음 얼마 동안은 진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네 가지 밭의 비유에서 설명하셨듯이(마 13:4-23), 얼마 가지 못합니다. 일시적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갈 밭의 곡식같이 혹은 가시 밭의 곡식같이 영원한 생명으로서의 열매는 맺지 못합니다. 처음에 그리스도께로 돌아섰을 때 행복해 하고 기뻐하였지만(마 13:20), 여러 가지 문제와 박해 혹은 세상적인 욕구가 아주 강해지면, 여지 없이 믿음에서 떠납니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셋째, 기적적 믿음이 있습니다. 이것은 초자연적인 일들을 믿는 미신 같은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실제적인 기적을 믿는데, 종종 기적을 보았거나 기적을 경험하였다고도 주장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오직 현시대의 치료나 방언과 같은 기적을 강조하는 ‘기독교만’을 원합니다(마 7:22-23; 행 8:18-20; 고전 13:2). 이들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만 원하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신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관심이 없습니다.

이상의 경우들에서는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모든 것들을 우리의 삶 가운데 신실하게 적용하고자 하는 그런 식의 ‘믿는 자’란 아무도 없습니다. 이제 성경이 묘사하고 있는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두 가지인데, 하나님의 성신의 선물로 현존하는 진짜 믿음입니다.

첫째, ‘확실한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특별히 죄의 실체, 구원주, 예배 등에 대해서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본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구원이 없을 수도 있다는 평가는 정당합니다. 우리의 지식은 확실하고 단단해야 합니다(히 11:6). 여기서 우리는 교회 안에서의 올바른 성경 교육과 그리고 교회 밖에서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선교 사역의 중요성을 봅니다.

둘째, ‘충성된 신뢰’입니다. 성신에 의해 개심한 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고백하는 것은, 사실상 이 진리에 대한 우리 자신의 개인적 서약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서부터 개인적으로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려야 하고, 그리고 개인적으로 우리의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그의 의로움을 달라고 간구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참된 믿음은 개인적 서약을 포함합니다. 성신께서 우리 안에서 이 진심 어린 믿음의 활성화를 위해 일하십니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참된 믿음에 대한 가장 위대한 실례는 아브라함입니다. 로마서 4:20-22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아브라함은 (1) “마치 믿음이 없다는 듯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고한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삭을 제단 위에 제물로 바치라고 한 명령을 받은 처지에서조차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실 것이라고 마음 깊이 신뢰했습니다.

참된 믿음에 대한 개인적 혜택은 신앙고백문답에 잘 나열되어 있습니다. (1) 죄에 대한 용서; (2) 영원한 의로움; (3) 영원한 구원. 이러한 혜택들을 받을 수 있는 기초는 우리의 믿음 그 자체가 아니라(제61문답). (1)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동시에 (2) 그리스도의 공로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참된 믿음으로 말미암은 영원한 구원이 있습니까? 확신이 있다면,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 드리십시다.

[제22문]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대답] 복음에 약속된 것을 믿어야 합니다(마 28:19-20; 막 1:15; 요 20:31). 이 복음은 보편적이고 의심할 여지 없는 우리의 기독교 신앙의 조항들인 사도신경이 요약하여 가르쳐 줍니다. 

구속에서 믿음의 위치에 대한 지난 번 문답은, 참된 기독교 믿음의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확실한 지식’에 대해서는 사도신경에 담겨 있는 모든 진리를 포함하여 제21문답이 언급하는데, ‘우리의 보편적인 신조들은 의심할 수 없는 기독교인의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것인데, 특히 위대한 진리인 창조, 죄, 구속, 그리고 심판 등에 대한 것으로 이를 통틀어 복음이라 부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신조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고백문답이 ‘사도신경’의 표현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한 이유에 대해, 아마도 종교개혁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사도신경을 그들 스스로 작성하여 가르쳤기 때문일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거꾸로 말해서, 이 신조는 1세기에 세례를 위한 고백용으로 기독교회에서 점차적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신자가 세례를 받을 때 목사는 문답을 실시합니다. “귀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믿습니까?” 세례 받는 사람의 대답은 “저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믿습니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이신 성자 하나님과 성신 하나님에 대한 질문과 대답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신조(‘나는 믿습니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크레도[credo]에서 유래)가 마태복음 28:19의 세례적 형식에서 왔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신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주의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첫째, ‘보편성’입니다. 이 신조는 보편적이기에 모든 기독교회는 이것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시대의 하나님 백성들의 신앙을 위한 것입니다.

둘째, ‘확실성’입니다. 이 신조의 진리들은 만약 어떤 사람이 스스로를 기독교 신자라고 부르기를 원한다면, 이 내용을 잘 이해하는 한 엉뚱한 질문을 하게 된다거나 의심을 갖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쉽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기독교인’입니다. 이 신조는 기독교의 근본 진리를 가르칩니다. 기독교는 모든 믿음 체계의 첫 번째입니다. 이러한 진리로부터 벗어나면 그곳에는 참된 기독교는 없습니다.

넷째, ‘믿음’입니다. 모든 종교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거나 혹은 삶을 지도하는 마음의 헌신입니다. 사실은 마음 속의 믿음은 인생의 모든 문제점들입니다. 비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에는 믿음이 기본적으로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 신들을 향해 있으며 틀리고 잘못 겨냥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성경의 삼위일체 하나님께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독교 믿음이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라고 하신 우리의 왕이신 구세주와의 언약의 교제가 살아서 분명히 나타납니다.

기억합시다. 미국의 개혁교회는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에 의해 해설된 사도신경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신조의 12개 조항을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이 신조를 낭독할 때 그것은 진정 여러분의 마음 속의 진실한 믿음입니까?

[제23문] 사도신경의 조항들은 무엇입니까? [대답] 전능하신 성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우리는 믿사오며, 그의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또한 믿사오니, 그분은 성신으로 잉태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며, 본디오 빌라도 아래에서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장사 되셨고, 음부에 내려가셨으며, 사흘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고, 하늘에 오르셨고, 전능하신 상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이 문답은 우리에게 사도신경에 대한 열두 가지 조항들을 제시합니다. 다시 반복하거니와 이 신조는 사도들이나 혹은 다른 한 사람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얼마간 점차적인 시간을 거치면서 세 개의 기본적 삼위일체 조항에다 다른 조항들이 첨부되게 되었습니다. “지옥에 내려가사”라는 문구는 AD 6-7세기 경에 첨부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이 신조의 대부분의 조항들은 대체적으로 3-4세기에 결합된 바에 근거했기 때문입니다.

일부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신조’는 필요 없고, 오직 ‘그리스도만’이라는 표어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도신경이나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들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사람이 만든 신조 말고, 오직 그리스도와 성경만을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논점은 한 마디로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신조란 성경이 하나님과 구원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가르치는지에 대한 간단한 신앙 진술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신조는 필요 없고 그리스도만’이라는 표어도 사실은 어느 한 개인의 신앙 진술로서 신조 그 자체입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내용과 의미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과 같은 종류는 얼마나 빈약한 신조가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신에 대해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마 22:42). 이 자리에 있었던 사도들에 의해 몇몇 초기 신앙고백들이 성경에 첨부되었을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3:16은 원래 초기 기독교인들의 찬송이나 고백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백에 따라 ...”로 시작합니다.

성경적 신조는 성경의 가르침으로부터 조심스럽게 발전되었고, 아래와 같은 중요한 목적에 봉사합니다.

첫째, 신조는 믿는 자들의 연합을 돕습니다. 그들은 공적인 신조를 수단 삼아 서로간에 동일한 믿음을 가졌음을 선포합니다.

둘째, 신조는 교회를 위한 믿음의 기준입니다. 신조는 교회 안의 사람과 교회에 들어오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교리 시험의 수단이 됩니다.

셋째, 신조는 후세대들을 위한 진리 보존을 돕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값비싼 보물인 믿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이것을 꼭 전달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변개시켜서는 안 됩니다.

넷째, 신조는 교회에서 믿음을 가르치기 위한 유용한 도구입니다. 우리는 신조가 사람이 만든 것임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신조는 성신의 도움으로 성경을 조심스럽게 연구함으로써 성경이 진짜 무엇을 가르치는지를 알아내는 거룩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신조는 교회에 의해 바뀔 수도 있지만, 그러한 일은 오직 모든 교회들의 합의와 아주 신중한 연구 후라야 가능합니다.

사도신경은 성경으로부터 표현이 만들어지면서부터 세월의 시험을 견디어 왔습니다. 그래서 거의 15세기 동안 교회가 고백해 왔습니다. ‘교회’이든 혹은 ‘기독교인’이든 간에 누구든지 이 사도신경의 고백을 거부한다면 그는 기독교인도 아니고 교회도 아닙니다. 물론 신조에 대한 고백이 마음으로부터가 아니고, 입만으로 그친다면 이 역시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의 고백은 그리스도인입니까?

Posted in 오늘의 신앙고백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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