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9월 13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06주차(16-19문답)

[제16문] 중보자는 왜 참 인간이면서도 의로운 분이셔야 합니까? [대답] 하나님의 의는 죄지은 인간이 죄의 대가를 치르기를 요구하나(사 53:3-5; 렘 33:15; 겔 18:4, 20; 롬 5:12, 15; 고전 15:21; 히 2:14-16), 누구든지 죄인인 사람으로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 값을 치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시 49:7-8; 히 7:26-27; 벧전 3:18). 

제16문답에서는 왜 구원자가 참 사람이며 의로운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설명합니다. 우리는 제14문답과 제15문답에서 인성과 신성 두 인격을 모두 겸비해야 하는 구원자의 자격에 대해서와 왜 꼭 그렇게 되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이미 배웠습니다.

여기서는 제14, 15문답에서 배운 것들에 더하여 우리의 대속자는 우리와 같은 인성을 지녀야 하지만 죄성은 지니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자는 일반적인 아담의 후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다”(고전 15:22)고 했는데, 왜냐하면 아담 안에서 태어나는 사람은 모두 죄인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아담 안에서 반복되는 삶을 사는 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죄가 없는 분은 결코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인성이 아담의 죄와 부패로부터 보호되기 위하여 성신에 의해 처녀의 몸에 잉태되셨습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천사는 마리아에게 “성신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이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 1:35)고 했습니다. 우리의 중보자의 처녀의 몸에서의 거룩한 수태와 탄생은 기독교의 근본 진리로서 사도신경에 포함되어 있습니다(제35문답).

우리의 구원자께서는 진짜 사람이 되셨습니다. 천사가 우리의 대리자가 되는 것은 가능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천사의 본성은 죽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면으로, 동물의 경우 영혼이 결핍되어 있으므로 하나님의 의가 요구하는 영적인 징계를 받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의로운 사람이시므로, 그렇게 우리의 주님은 죄가 없으시고, 어떠한 처벌을 받을 필요가 없는 완전하고도 절대적으로 의로운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의 완벽한 인간 본성(육체와 영혼)은 다른 죄성을 지닌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만족에 의해 사용되었습니다.

[제17문] 중보자는 왜 동시에 참 하나님이셔야 합니까? [대답] 그의 신성의 능력으로(사 9:6; 롬 1:4; 히 1:3), 하나님의 진노의 짐을(신 4:24; 시 130:3; 나 1:6) 그의 인성에 짊어지시며(사 53:4, 11; 요 10:17-18), 또한 의와 생명을 획득하여 우리에게 돌려주시기 위함입니다(사 53:5, 11; 54:8; 요 3:16; 행 20:28; 고후 5:21; 벧전 3:18).

제17문답은 제14문답에서 우리의 구원자는 하나님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부족해서는 안 될 필요성에 관해 진술한 진리를 반복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대리자로서의 구속주는 비록 죄가 없다 할지라도 또한 엄청난 화로서의 하나님의 진노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참 인성을 가진 하나님이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참 하나님’으로 존재한다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님과 함께 영원토록 전능하신 삼위일체의 제2위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임에 다름이 아닙니다. 오늘날 현대주의자들과 많은 이단들(여호와 증인, 크리스챤 싸이언스, 몰몬교 등등)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동일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부인합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격을 부인하는 것은 사실상 적그리스도요 버림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라고 한 말로써 시작합니다. 물론 ‘말씀’이라는 단어는 14절의 설명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말씀’은 창조주이시고, 아버지 하나님 및 성령님과 함께 하십니다(3-10절). 그러면서 볼 수 없는 분이신 하나님을(18절), 보이는 하나님으로서 ‘선포(계시)’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이어야만이 하나님을 보일 수 있습니다.

아들의 신성과 예수님의 인간 본성의 결합을 ‘성육신(하나님께서 육체가 되셨다)’이라고 칭합니다. 이 두 본성의 결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신비이지만, 그럴지라도 우리는 이것이 실제로 발생하였다고 믿는데, 만약 우리가 구원 받았다면 그렇게 되었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회의 처음 몇 세기 동안, 몇몇 영향력 있는 교사들이 우리 주님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성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가르쳤습니다. 이들의 잘못된 관점은 주로 네 가지였는데, 교회는 회의를 열어 이들의 주장이 성경에 위배된다는 판정을 내렸습니다. 그들의 관점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1. 아리안주의(Arianism). 아리우스는 예수는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가장 위대한 분이시지만, 정작 하나님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했습니다.
  2. 아폴리나리안주의(Apollinarinism). 아폴리나리우스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지 참 인간은 아니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했습니다.
  3. 네스토리안주의(Nestorianism). 네스토리우스는 예수님에 대해 두 본성(신성과 인성)을 함께 지니신 분으로서 보지 않고, 두 개의 서로 다른 인격(하나님과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즉, 그는 그리스도의 인격의 개별성을 부인했습니다.
  4. 유티키안주의(Eutychianism). 유티키스는 예수는 한 인격으로서 오직 한 본성만을 지녔고, 이 한 본성은 하나님과 사람이 혼합된 것이어서 신성이 충만한 것도 아니요 인성이 충만한 것도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즉, 그는 그리스도의 두 본성을 부인했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한 분이시며, 서로 다른 두 개의 본성, 즉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본성(신성)과 완벽한 인간으로서의 본성(육체와 영혼)을 지니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성경이 우리의 주님에 대해 이런 분이시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비록 궁금하긴 하지만 호리만큼의 의심도 없이 믿습니다. 궁금증을 갖는 것과 의심하는 것 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신적 본성은 예수님의 인적 본성에 능력을 부여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성으로서 하나님의 혹독한 진노 아래 고통을 받으실 수 있으셨으며, 그럴지라도 하나님께 대한 미움이나 반감을 전혀 갖지 않으셨습니다. 믿는 자들 모두가 받아야 하는 지옥의 모든 징계를 대신 받으시는 동안에도 우리 주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을 완벽하게 사랑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인간 본성으로서 하나님의 한없는 진노의 고통을 감내하였던 이것은 신적 본성의 능력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두 본성의 연합과 그의 말할 수 없는 고통 문제와 관련하여 오직 최소한의 정도 밖에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누구도 우리의 구원자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받은 고통만큼의 고통을 받거나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이셨기에 그 모든 고통을 견디실 수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완벽한 삶과 죽음의 완벽한 고통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의와 생명이 우리를 위해 지불되었습니다.

[제18문] 그러나 누가 참 하나님이시며(렘 23:6; 말 3:1; 롬 8:3; 갈 4:4; 요일 5:20) 동시에 참 인간이시고(눅 1:42; 2:6-7; 롬 1:3; 빌 2:7; 히 2:14, 17; 4:15) 의로우신 그 중보자이십니까(사 53:9, 11; 렘 23:5; 눅 1:35; 요 8:46; 히 4:15; 7:26; 벧전 1:19; 2:22; 요일 3:5)? [대답]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니(마 1:23; 눅 2:11; 요 1:1, 14; 14:6; 롬 9:5; 딤전 2:5; 3:16; 히 2:9), 즉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신 분이십니다(고전 1:30; 고후 5:21). 

제15-17문답에서처럼,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 내기 위한 대체자의 자격이 무엇인가를 잘 살펴볼 때, 우리는 구속자의 정체성을 잘 알게 됩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2000년 전에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구원의 중보자입니다. 이 질문에서 강조되는 세 가지 문제를 주목합시다.

 첫째,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거저 주신바 되셨습니다. 이 진술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당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에게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실 의무가 결코 없으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단지 사랑과 자비만으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유명한 구절인 요한복음 3:16에서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는가를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셨도다!” 로마서 5:8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만이 아들을 무상으로 내어 주신 것은 아닙니다. 아드님께서도 우리의 구원주가 되시기 위하여 자원하여 이 세상으로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5:2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주셨다”고 선포한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갈 2:20; 요일 3:16).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죄인들 쪽에서 주님을 원하거나, 주님을 요청하거나, 주님을 받아들일 만했거나, 주님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3:3)라고 한 바와도 같았습니다.

둘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완벽하게 구속되었고 의로워졌습니다. (이 진술을 제30문답과 비교해 봅시다!) 그리스도는 완전하고 충분한 구원자이십니다. 마치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부족한양 무엇 하나라도 더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선택 받은 각인을 위해 하나님의 의를 충분히 만족시켰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었고, 그리고 구원주의 죽음과 부활의 값이 지불됨으로 우리를 위한 영생이 사지게 되었습니다. 회개와 믿음조차도 승천하신 영광의 주님에 의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습니다(행 5:31; 엡 2:8).

셋째, 중보자는 오직 한 분이십니다. (이 질문의 표현을 주목합시다!) 정통(참된) 기독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요, 두 본성인 신성과 인성을 지니신 분으로 믿어 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신비를 접하게 됩니다. 우리는 당연히 그리스도께서는 두 사람이 아니고 한 사람임을 강력히 주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가리키실 때, 항상 ‘나’라고 하셨지 ‘우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지난 번 학습에서 보았듯이, 거짓 선생 네스토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는 두 사람이라고 가르침으로 혼란을 일으켰는데, 따라서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하여 심도 있게 의논한 끝에, 최종적으로 네스토리우스가 잘못되었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의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칼케돈 신조’를 작성했습니다(AD. 451). 이 유명한 신조에서 그리스도의 두 본성의 관계성에 대해 진술한 바를 찾아보는 것은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

[제19문] 우리는 이것(18문답의 참 중보자 인식)을 어디에서 압니까? [대답] 거룩한 복음에서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복음을 처음에 낙원에서 친히 계시하셨고(창 3:15), 후에는 족장들과(창 12:3; 22:18; 26:4; 28:14; 49:10) 선지자들을(사 42:1-4; 43:25; 49:6; 52:13-53:12; 렘 23:5-6; 31:32-33; 미 7:18-20; 요 5:46; 행 3:22-24; 10:43; 롬 1:2; 히 1:1) 통해 선포하셨으며, 또한 율법의 제사들과 다른 의식들로써 예표하셨고(레 1-7장; 골 2:17; 히 10:1, 7), 마지막에는 그의 독생자를 통해 완성하셨습니다(롬 10:4; 갈 3:24; 4:4-5; 히 1:1-2).

제19문답에서는, 구세주는 어디에서 보여지셨는지, 다시 말하자면 그분이 어떻게 우리에게 알려지셨는지를 말해줍니다. 그는 하나님에 의하여 오직 한 곳 성경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집니다. 성경은 ‘복음’을 구원의 ‘복된 소식’으로서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과 자신이 베푸시는 사랑을 인간에게 가르치시기를 기뻐하시는데, 그러한 가르침을 계시라고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실 때에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계시는 두 가지로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일반 계시입니다. 이것은 창조물인 자연에서의 하나님 자신에 관한 하나님의 가르침을 가리킵니다. 우주는 “그의 손으로 하신 일”입니다(시 19:1). 그리고 우주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지혜와 능력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하늘, 별, 지구, 바다, 나무, 풀, 동물 등등과 더불어 특별히 사람의 존재는 창조주의 위대함을 보여줍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모든 사람은 자연에서 하나님과 대면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와 영광을 돌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롬 1:19-20). 우리가 세상(과학 등등)에 대하여 공부할 때, 사실은 하나님에 관한 하나님의 일반 계시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과학 선생님이 이러한 부분에 대해 가르친 적이 있습니까?

둘째, 특별 계시입니다. 자연이 하나님을 계시하고는 있지만, 자연을 공부함으로써는 구원에 이르는 진리를 아무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창조는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하여는 어떤 것도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관한 메시지는 오직 성경에서만 찾을 수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특별 계시’라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그리스도, 구원 그리고 자연 계시까지 포함하는 우리의 최종적인 지식의 근원입니다. 특별 계시인 성경은 우리의 믿음과 실천에 대한 유일한 기준입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의 전체 성경은 예수님에 관하여 선포해줍니다. 제19문답은 구약이 가르치는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입니다. 에덴 동산에서부터, 그리고 그곳에서조차 하나님께서는 구원자를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 3:15에서 그를 ‘여자의 후손’이라고 불렀고, 그리고 성경의 나머지 부분은 이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이 점진적으로 구체화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족장들(문자적으로 옛적 아버지들)’은 창세기에서 거론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 그리고 유다의 후손으로서 오실 구원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시대 때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영감을 힘입어 장차 오실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좀 더 추가적인 내용들을 말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구약성경에서 성경을 기록한 마지막 선지자였으되,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사람들에게 제시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주신 제사법과 관련한 많은 희생제물과 의식을 통해서도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하여 가르쳤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되는 양과 염소처럼, 그렇게 자기 자신을 희생제물로 내어 놓으실 구속주를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것이라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 제사장들 그리고 왕들은, 역시 장차 선지자로서, 제사장으로, 그리고 왕으로서 오실 그리스도의 표상이었습니다.

구약의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은 처음에는 아주 간단하고도 적은 분량이었지만, 갈수록 더 많은 정보들이 제공됨으로써 최종적으로 구약시대를 마치는 시점에서는 ‘특별 계시’가 되는 위대한 책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구약 특별 계시가 목표한 바의 성취였습니다. 모든 것들이 준비되자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그를 보내셨습니다(갈 4:4).

이 아주 긴 가르침은 성경의 영감에 관한 작은 설명 없이는 아직 끝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진짜 말씀으로서의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습니다.

  1. 성경이 스스로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선포합니다. 우리는 구약 성경 전체를 통해, “그리고 주께서 말씀하시기를”이라고 한 표현과 그와 비슷한 표현들을 읽습니다. 누가복음 1:68-70, 디모데후서 3:16, 그리고 베드로후서 1:21 등도 역시 구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기록되었다고 말합니다.
  2.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말씀하셨습니다(마 4:4; 요 10:35).
  3.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이 임하고 나면 신약 성경을 기록할 초자연적인 능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그의 사도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요 14:26; 15:26-27)
  4. 신약 성경의 기록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고전 2:13; 살전 4:8).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권위와 성경의 권위는 동일합니다. 성경을 거부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은 결코 틀리지 않고(충분히 신뢰할만하다), 오류도 없다(실수가 없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물론, 이와 같은 전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경 자체가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성령께서 영적인 마음과 이해와 믿음을 주시지 않으면 누구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고전 2:14).

마지막으로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과 완벽한 말씀이라고 말하려면, 처음 주어진 히브리어와 헬라어 단어들을 참고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다양한 성경 번역들은 비록 아주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것들은 대단히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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