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9월 06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05주차(12-15문답)

[제12문]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 의해 우리가 일시적인 형벌과 그리고 영원한 형벌을 받아 마땅한데, 어떻게 이 형벌을 피하고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겠습니까? [대답]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의가 만족되기를 원하십니다(창 2:17; 출 20:5; 23:7; 겔 18:4; 히 10:30). 따라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든 아니면 다른 이에 의해서든 죄값을 완전히 치러야 합니다(사 53:11; 마 5:26; 롬 8:3-4).

성경이 인간에 대하여 유죄 선고로만 끝내지 아니하였고, 그에 따라 신앙고백문답도 제11문답만으로 끝내지 않은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제 신앙고백문답의 두 번째 주제 부분인 죄와 유죄 선고로부터의 인간의 구원이라고 하는 복된 소식과 복음에 관하여 공부할 것입니다. 신앙고백문답 제73문답의 질문에 따르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구속의 본질과 구속주가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에게 예비된 구속을 어떻게 믿음을 통해 받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제23-58번문답)’으로부터 복음이 무엇인지를 핵심적으로 잘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위대한 진리인 ‘믿음에 의한 칭의(제59-64번)’에 대해 세부적으로 배우게 됩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하고 구원의 길에서 우리를 유지하시고 지키시고 힘을 주시는 의미로, 교회의 매고 푸는 권세와 성례(세례와 성만찬)에 대하여 설명을 듣게 됩니다.

제12문답에서는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기까지는 누구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웁니다. 인간의 구원이 단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완벽한 공의에 따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정의로우십니다. 결코 인간의 죄를 묵과하지 않으십니다. 제11문답의 질문에서 설명했듯이 하나님의 공의와 징계는 인간의 죄를 철저하게 심판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이곳 제12문답은 하나님의 공의의 만족의 필요성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즉 우리의 죄에 대하여 충분한 징계를 가하시는 데 따른 하나님의 공의의 만족입니다. 이처럼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우리에게 구원이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다 중요한 질문은 그렇다면 “이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데 있는 것이겠습니다. 누가 그리고 무엇이 죄인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고, 그리하여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떠맡고 나아가 피하도록 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진정 하나님의 형벌은 확실하고, 현세(지상의 세계)와 영원한 심판(미래의 지옥) 두 곳에서 요구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과연 어떻게 해야 당연히 받을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정당한 심판으로부터 구원 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만이 이에 대한 대답을 내어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1:7-8을 보십시다.

[제13문답]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킬 수 있습니까? [대답]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죄책을 증가시킬 뿐입니다(욥 9:2-3; 시 130:3; 마 6:12; 롬 2:4-5). 

우리는 천국에서 하나님의 총애를 누리고 하나님과 함께 지내기에 합당하게끔 우리를 회복시켜주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하지만 이를 위한 전제로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의가 반드시 만족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는 모든 죄들은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죄를 그냥 관대히 봐주신다면, 그때에는 하나님 스스로가 정의롭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은 가치 없게 되고 맙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의의 만족이 어떻게 우리에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면하게 됩니다.

제13문답은 “우리 스스로가 이 엄청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데 대한 물음인데, 대답은 단호하게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속죄 혹은 스스로의 구원이란 전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어떤 죄인이든지 하나님께 자신의 죄값을 지불해야 하지만, 사실은 지옥의 영원한 심판 밖에는 달리 지불할 방법이 없습니다. 만에 하나로 혹 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온전히 또는 충분하게 지불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옥에서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미워하는 죄를 다시 짓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옥에서 고통 중에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죄를 증가시킨다는 사실은 얼마나 무시무시합니까!)

두 번째로, 하나님을 향한 완벽한 사랑과 순종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도 우리로서는 만족을 드릴 수 없는데, 이유는 인간의 마음은 부패해 있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각 인간으로서는 단 하루라도 죄스러운 생각과 표현 그리고 행동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자신의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인간은 살아가는 순간순간마다 하나님께 대한 완벽한 사랑의 표현을 요구 받고 있습니다. 결국 이와 같은 두 가지 사실은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 구속을 성취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정리하자면, 첫째, 우리의 모든 죄는 영원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제11문답). 둘째, 세상에서 살고 있는 동안 인간은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살 수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는 매일의 용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다시 자신의 죄를 날마다 증가시킵니다.

결국 이 질문과 대답은 선한 일을 성취하는 사람이라면 능히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주변의 모든 종교 형태를 정죄합니다. 그리고 소위 죄인의 ‘선한 일’이라고 평가되는 것들도 엄밀히 말해서 실제로는 선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과거의 죄와 죄책들은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자신의 선한 행위가 자신을 천국으로 들어가게 해준다고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기대가 무너져 지옥에서 영원토록 처벌받아야 하는 실상 앞에서 억장이 무너질 것입니다.

[제14문답] 어떠한 피조물이라도 단지 피조물로서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킬 자가 있습니까? [대답] 단 하나도 없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책 때문에 다른 피조물을 형벌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겔 18:4; 히 2:14-17). 둘째, 어떠한 피조물이라도 단지 피조물로서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짐을 감당할 수 없고, 다른 피조물을 거기에서 구원할 수도 없습니다(시 49:7-8; 130:3; 나 1:6; 히 10:4). 

제14문답은 누가 우리를 위하여 속죄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에 관한 또 다른 질문에 대해 대답합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전 질문에서 보았습니다. 그러면,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면 우리를 위해 대리자가 되어줄 수 있겠습니까? 신앙고백문답에서의 ‘피조물’이란, 하나님 자신이 아니요,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어떤 것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반복하지만 대답은 “아니요!”입니다.

첫째, 인간은 자신이 스스로 범한 죄로 인해 형벌을 받는다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만약 어느 한 인간이 지은 죄값을 대신하여 다른 어떤 피조물을 징계한다면,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의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게다가 여기에는 사람보다 못한 천사와 동물은 제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또 천사는 몸이 없고 동물은 영혼이 없는데, 이 둘 모두가 형벌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참된 인간만이 죄인인 인간의 온전한 대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켜줄 만한 대리자 자격을 온전히 갖춘 사람이란 결코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인간은 예외 없이 자신부터가 죄인이고, 그리하여 자신이 지은 죄값을 받아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런 경우가 아니라 할지라도 사람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하나님께 완전한 순종을 드릴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의 문제부터도 해결할 수 없는 법이므로, 여분의 공적을 쌓을 수도 없고,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공적이 모자라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것을 넘겨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죄가 없는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이러한 새로운 인간이 지옥에서 받아야 할 당신의 형벌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한 번 더 대답은 “아니요!”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할지라도, 한 순간이라도 죄 아래 무너지지 않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죄에 빠지지 않아야만,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의 짐을 질 수 있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형벌은 그를 죄인이 되게 하는 자에게 집행해야 하는데, 그러면 그는 스스로 형벌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것 외에도, 그처럼 완벽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오직 다른 한 사람만을 대신해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는 두 사람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의 대리자는 될 수 없습니다.

아주 명백하게, 우리 스스로 성취할 수 있다거나 혹은 다른 피조물에 의해 구속을 받는다는 희망은 결코 없습니다. 다른 어떤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심판을 대신 감당할 수 없고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사랑을 떠맡을 수도 없습니다. 인간은 스스로는 참으로 희망이 없습니다. 인간의 죄와 완벽한 순종의 책임이 고려된 하나님의 완벽한 의가 만족되도록, 인간을 구원하는 방법을 계획해 낼 수 있다면, 오직 하나님 한 뿐이십니다. 이 방법은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에서 보상의 죽음으로 내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제15문답]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중보자와 구원자를 찾아야 합니까? [대답] 참 인간이시고(고전 15:21; 히 2:17) 의로운 분이시오(고후 5:21; 히 7:26) 동시에 참 하나님이시고 모든 피조물보다 능력이 뛰어난 분이십니다(사 7:14; 9:6; 렘 23:6; 요 1:1; 롬 8:3-4).

제15문답과 16문답 그리고 17문답은 우리를 대신할 수 있고, 또한 하나님의 의를 충족시킬 수 있는 대리자는 정확하게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가르칩니다.

제14문답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죄인을 위한 대리자는 스스로가 완전해야만 합니다. 게다가 그러한 대리자는 피조물보다 더 우월하여야 하며, 동시에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의 대리자는 초자연적인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지구상에는 결코 한 번도 보여진 적이 없는 유일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구속자는 인류의 어떤 능력과는 확연히 다른 방법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결국 하나님에 의해서 공급되어야만 합니다. 인류는 하나님의 의 앞에서 단 한 명의 죄인의 몫만이라도 대신할 수 있는 대리자를 낳지 못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면한 우리의 문제에 아주 적합한 대리자로서 하나님과 사람 두 본성을 지닌 중보자를 구원자로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제18문답은 이 구원자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라고 확인합니다.

우리가 나머지 신앙고백문답과 성경을 잘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 질문에서 사용된 두 개의 단어에 대한 설명이 좀 더 필요합니다. 그것은 ‘중보자’와 ‘구속자(또는 구원자)’입니다.

첫째, 중보자에 대해서입니다. 중보자는 서로 다른 두 사람 사이에 서서 둘을 상호 간에 화해시키는 일을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라고 선포합니다. 구약성경에서의 선지자들, 제사장들 그리고 왕들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중보자로서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죄를 제거하시고 새 언약을 세우시는 것을 통하여 홀로 우리를 하나님께 데려가시고 하나님을 우리에게 오게 하시는 참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에 불과했습니다(히 8:6; 9:15; 12:24).

둘째, 구속자에 대해서입니다. ‘구속자’는 노예나 포로의 몸값을 지불하고 풀어주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유월절 희생제사의 피를 지불하시고 동시에 당신의 강한 권능을 통하여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속하셨습니다(출 6:6; 15:13).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값을 지불하심으로 죄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시고 사탄의 권세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그의 피는 우리의 구원을 샀습니다(엡 1:7). 그러나 그 값은 하나님의 의에 지불된 것이었지 사탄에게 지불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세주는 중보자이신 동시에 구속자이십니다. 그는 이러한 엄청난 일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에 의해 세워지셨고, 그에 따라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심에 있어서 신인(하나님과 사람)으로서 의도적으로 행동하셨습니다.

Posted in 오늘의 신앙고백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