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8월 23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03주차(6-8문답)

[제6문답]: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그렇게 악하고 패역한 상태로 창조하셨습니까? [대답]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선하게(창 1:31), 그리고 자신의 형상(창 1:26-27), 곧 참된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하셨습니다(엡 4:24; 골 3:10).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마음으로 사랑하며, 영원한 행복 가운데서 하나님과 함께 살고, 그리하여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시 8:4-9; 계 4:11).

제6문답과 7문답에서는 인간의 죄성의 기원 또는 원인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을 비난하지 않는 사람은 비난 받지도 않는다는 것을 배웁니다. 어느 누가 자신의 죄성에 대해 하나님을 원망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죄 있는 인간은 자신의 죄에 대해 자신의 창조자를 비난합니다.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그가 한 변명을 기억하십니까? 그는 하나님께 대들기를,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라고 했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아담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와를 주신 데 대해 원망한 것입니다. 사람은 잘못을 범했을 때, 자신의 죄성을 옹호하려고 자기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 것이 대체적입니다. 혹은 기껏해야 “나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었어!”라면서 핑계를 댈 것입니다.

신앙고백문답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결코 악하게 창조하시지 않았고, 확실히 선하게 창조하셨다고 가르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습니다. 여기서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었을 때 지니게 되었던 ‘하나님의 형상’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킵니까? 하나님의 형상이란 인간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의미인데 이로써 짐승과 구별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이란 영원한 영적 생명을 지니고 있는 인격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인격성은 지(mind) 정(affection) 의(will)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먼저 아담은 지성으로써 자신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정으로써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의지로써는 의와 거룩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아담은 영원한 복락 가운데서 하나님과 함께 살고,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릴 수 있기 위하여, 그렇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던 것입니다. 아담은 그러한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의지로써 타락하고야 말았습니다. 향후 그의 후손일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은 아담의 부패성이 자신에게 유전된 데 따른 선천적인 악함과 부패로 말미암아 아주 작은 점의 점만큼이라도 하나님을 원망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약 1:13-18).

[제7문답]: 그렇다면 이렇게 타락한 사람의 본성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대답] 우리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타락하고 불순종한 데서 왔습니다(창 3:1-24; 롬 5:12, 18-19). 그때부터 사람의 본성은 심히 부패해졌고 우리는 모두 죄악 중에 잉태되고 출생합니다(시 51:5; 요 3:6).

제6문답에서 보았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부패와 타락한 본성에 대한 원인자가 아니심으로 어떠한 비난도 받지 않으십니다. 대신 원칙적으로 아담과 하와가 비난을 받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낙원인 에덴 동산에서 우리의 처음 부모는 자신들 스스로의 의도적인 불순종으로써 죄를 지어 타락하였습니다. 아담의 타락과 그로 말미암아 죄성의 존재가 된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의 자의적 행동에 의해 초래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은 아담의 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담이 범한 죄는 자신만의 성품을 완전한 죄악으로 채우게 되는 그런 정도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죄된 본성은 이후의 모든 인류에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본성’이 ‘부패하였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태중에서부터 부패되었다는 것을 고백해야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어머니의 뱃속에 자리잡게 될 때부터 부패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라고 탄식했습니다. 로마서 5:12은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라고 선포합니다. 이러한 구절들은 진정 아담이 범한 한 가지 죄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죄인이 되고, 그러한 죄로 말미암아 부패한 삶을 살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의 죄의 원인이 되게 한 이 아담의 죄에 대해 ‘원죄’라고 부릅니다.

그렇습니다. 인류는 총체적으로 타락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사람의 성품은 선한 법이므로 교육을 잘 받을수록 더 나아진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교육, 돈, 행복한 환경 등등이 사람의 질을 향상시키기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정반대로 가르칩니다. 애초부터 아담은 거룩하고 행복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아주 고귀한 자로 창조되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의 의지로써 타락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아담은 더 이상 거룩하지 않게 되었고, 행복하지도 않은 자가 되었습니다.

썩은 사과의 부패한 모습을 상상해 봅시다. 인간의 모습이 그와 다를 바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전체 생애를 통해 본성으로서 행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은 오직 악하고 사악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완벽한 존재였던 아담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죄를 지었습니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단지 우리로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서 만족할 뿐입니다. 이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의 한 부분인 것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죄에 대한 비난과 책임은 아담에게만 남게 되었고, 지금의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께 미룰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닙니다.

[제8문답]: 그렇다면 우리는 그토록 부패하여 선은 조금도 행할 수 없으며 온갖 악만 행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까? [대답] 그렇습니다(창 6:5; 8:21; 욥 14:4; 사 53:6; 딛 3:3). 우리가 하나님의 성신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참으로 그렇습니다(요 3:3, 5; 고전 12:3; 고후 3:5).

제7문답에서 살펴보았듯이 인간의 죄의 기원 혹은 근본은 사람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이지 하나님과는 상관 없습니다. 제8문답은 인간은 어떠한 선한 일도 수행할 수 없고, 도리어 모든 악한 일만을 행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정말이지 심각하게 악해진 것입니다.

인간 영혼의 이와 같이 타락한 상태는 부모로부터 물려 받게 되었는데, 이것을 신학적으로 ‘전적 부패’라고 칭합니다. ‘부패’라는 명사로 번역된 라틴어는 ‘구부러진, 어긋난’의 의미를 지닌 ‘디프라바레(depravare)’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부패하다’는 것은 곧은 길로부터 벗어나 ‘구부러졌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의의 곧은 길’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죄에 사로잡혀 있기에,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변질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거듭나게 되기 전까지는, 인간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있고, 오로지 이 세상만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불경건하고, 선하지도 않고, 하나님이 없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엡 2:12). 진실로 인간은 거듭나게 되기 전까지는, 어떠한 거룩한 생각을 한다거나, 하나님을 사랑하고픈 마음을 품는다거나, 하나님의 사랑의 법에 순종한다거나 기타 등등의 경건의 영역에서 철저히 무능력해졌습니다. 인간은 부분적으로가 아닌, 전적으로 부패했습니다. 인간의 의지는 물론이고 양심조차도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이 전적 부패 교리가 의미하는 바는, 믿지 않는 사람인 경우 전적으로 사악한 행동만을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참된 의미는 항상 ‘그럴 경향이 있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나름의 믿지 않는 자들도 나름 사람이 보기에 선해 보이는 그런 일들을 하곤 합니다. 가령 그들은 의사로서 봉사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돈을 기부하기도 하고, 품위 있는 시민으로서의 행동도 하고 기타 등등 선한 행동을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그런 유의 소위 ‘선한 일들’이란 것은, 여전히 악한 마음에서 나온 것들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한 눈으로 보시기에는 전혀 선하지 않습니다. 자연인에게서의 ‘선행’과 ‘친절’은 항상 사람을 향하여 나타나는 것이지, 결코 하나님을 향해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참된 선을 행하지 못하는 인간의 원천적인 무능력은, 인간으로 하여금 악을 행치 않는 데서도 자유롭지 않는다는 것을 주목케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도록 요구 받고 있지만,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처해 있는 전적 부패의 상태를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의 마음 속에서부터 자리잡고 있는 죄의 권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성신에 의해 거듭나는 것만으로, 즉, 하나님의 성신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부패한 마음이 영적인 생명을 지니게 되는 데서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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