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7월 12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104문답

[질문] 넷째 간구로 우리는 무엇을 구합니까? [대답]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넷째 간구로 우리는 이생의 좋은 것들 가운데서 충분한 분깃을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선물로 받고, 그와 아울러 하나님의 복 주심 누리기를 구합니다(창 28:20; 잠 10:22; 30:8-9; 마 6:31-34; 빌 4:11, 19; 딤전 4:4-5; 6:6-10).

소신앙고백문답의 제104문답에 배치된 주기도문의 넷째 간구는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내용입니다. 일용할 양식이란 ‘매일의 양식’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의식주(衣食住)를 대변합니다. 즉 옷과 음식과 집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서,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를 가리킵니다. 이 사상은 기본적으로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을 보존하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신데 따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세상 창조는 그것에 대한 보존과 발전을 포함하는 것이로되, 그러한 데 따라 주권적 권능 문제가 수반되는데, 이것을 섭리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주권적 섭리의 뒷받침이 없이는 피조물들에 대한 보전과 유지는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신학적으로나 신앙고백적으로나 창조주에 대한 논의는 반드시 다음 단계를 섭리자에 대한 논의로 이어가기 마련이고, 그러할 때라야 비로소 신론(神論)이라는 담론도 완성적이게 됩니다. 주기도문의 넷째 간구를 잘 이해할 수 있으려면, 다음과 같은 구속사의 현장에 대한 재확증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생존과 발전은 타락하기 전에도 하나님에 의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인데 따른 것입니다. 이 관계는 타락 후에도 계속되는 것이로되, 이번에는 사실관계가 더더욱 명확해졌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감격에 겨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라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의 의식주를 도맡아 주신다는 사실을 들어, 하나님과 피조물 간의 관계를 보다 더 심화시켜, 성부와 그의 자녀들의 관계로 묘사하셨고, 그에 대한 증거로 사방팔방에서 보존되고 있는 자연을 증거들을 제시하셨습니다. 곧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마 6:25-28)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라고 하신 말씀은 단연 압권입니다. 이것은 성도와 세상을 가르는 기준입니다. 세상은 스스로 자신을 보존해 나가려고 하는 데서 매우 특징적입니다.  하지만 사실상 불가능의 미로를 계속 헤매는 것이고, 끝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Möbius strip)를 달리고 또 달리는 격입니다. 세상이 빠져 있는 양 극단의 명백한 이율배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한편에서는 인간 수명을 최대한 늘려 나가기 위한 의학 발전에 온 힘을 기울이지만, 다른 편에서는 단 한 방에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무기 계발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자는 불가능하지만, 후자는 항상 가능합니다. 결국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라고 하신 말씀은 여전히 세상을 향해서도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도의 신앙생활의 원리에 대해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 4:4)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40년간 광야에서 생존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통한 임상(臨床)과 증거(證據)로서 확증(確證)된 바를,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스스로 적용하시면서 선포하신 데 따른 것입니다(신 8:1-4). 극도의 굶주림으로 말미암는 아사 직전의 위기 앞에서 예수님의 생명이 여전히 보존된 것은,  물리적인 양식으로서의 떡 그 자체의 공급이 아니라, 당신께서 맡기신 사명에 끝까지 충성하시는 데 따라, 그러한 예수님을 기뻐하셔서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의지였습니다. 여기서 ‘의지’란 당신의 자녀들의 생명을 보존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실제적인 역사를 대변하는 용어로서, 곧 말씀을 가리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빛을 창조하시기를 기뻐하시면서 구체적으로 실행하신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역사를 계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리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고, 그러한 권세를 받은 자다운 생명력으로써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요 1:12). 구원 받은 자답게 용맹무쌍한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작은 예수의 자리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구속사의 현장을 지어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에 사탄의 위협에 직면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여전히 보존해 나가신 하나님의 역사는, 작은 예수들의 삶 속에서 재현되기 마련입니다. 자신이 그러한 자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한 기도 형식의 신앙고백으로써 실증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한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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