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6월 28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102문답

[질문] 둘째 간구로 우리는 무엇을 구합니까? [대답] “나라이 임하옵소서”라는 둘째 간구로 우리는 사탄의 나라가 멸망하고(시 68:1, 18; 마 12:25-28; 롬 16:20; 요일 3:8), 은혜의 나라가 흥왕하여서(시 72:8-11; 마 24:14; 고전 15:24-25; 계 12:10-11)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거기 들어가 지켜 주심을 받고(시 119:5; 눅 22:32; 요 17:9, 20; 롬 10:1; 살후 3:1-5), 영광의 나라가 속히 오게 하여 주시기를 구합니다(계 22:20).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 제102문답은 주기도문에서 ‘나라이 임하옵소서’라고 한 부분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서 ‘나라’란 두말할 여지 없이 ’하나님 나라’를 가리킵니다. 이는 주기도문이 마태복음 5-7장에서 전개된 ‘하나님 나라(천국)’를 주제로 한 산상수훈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데서도 여실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외치신 일성이 바로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곧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복음의 주제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하나님 나라인 것을 보게 됩니다. 구약시대 동안 이스라엘 나라를 통해서 전개되어 나온 하나님 나라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에게까지 확장되게 되는 형식인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로마의 옥에 갇혀 있으면서 행한 사역을 요약할 때에도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행 28:30-31)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의 사역의 핵심을 놓고 ‘하나님 나라 전파’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가르침’ 등의 양면으로 설명한 것은 복음의 특징을 잘 묘사해줍니다. 그러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가르침의 결론은 교회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받아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라고 하신 데서도 명확합니다.  그러므로 크게 보아 하나님 나라와 교회는 같은 것입니다. 그러할 때에 구약시대를 통하여 쭉 전개되어 나온 ‘하나님 나라’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통치권이 사람들에게서 막힘이 없이 잘 시행되는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나라와 백성인 데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백성에 성립될 것임은 자명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구약시대 전반을 통해서 뚜렷이 드러났듯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통치에 온전히 복종하지 아니했고, 그 결과 하나님의 언약적 심판을 받게 됨에 따라,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은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백성들에게서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심에 있어서 다른 무엇에 앞서 죄 문제부터 해결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대속물이 되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의 죗값을 해결해 주셨고, 성령의 신비적 역사로써 그들 속에서 새 생명이 되어 주심으로써, 더 이상 죄의 권세에 사로잡혀 살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즉 죄의 왕 노릇 하는 권세로부터 벗어나 은혜의 왕 노릇 하는 권세에 속하여 사는 백성들이 출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이후로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죄인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복음의 부름에 응답하여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셨고,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인 삼아주시면서, 나아가 하나님의 양자로 입양시켜 주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진리를 진심으로 믿게 되면, 오매불망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소망하지 아니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데 따라 ‘나라이 임하옵소서’라는 기도에 힘쓰게 됩니다.

‘나라이 임하옵소서’라는 기도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의 소원을 하나님께 빈다는 의미입니다. 먼저, 자기의 인생의 목표와 내용에 있어서, 지금까지의 자기중심에서 하나님의 영광중심으로 돌이키게 됩니다. 본디 인생의 참된 가치란,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라고 한 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백성이 많아져 가는 것은 상대적으로 ‘사탄의 나라는 쇠퇴하여 종국에는 멸망케 될 것’을 예상케 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 나라가 충만해짐으로써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거기에 들어가 지켜 주심을 받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라고 한 바가 편만해지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영광의 나라의 신속한 도래’를 갈망하게 됩니다. 이는 성도로서는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맛보아 알고 풍성히 누리는 삶을 살게 된 까닭에 의당히 그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마감하는 요한계시록 역시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라는 형식으로서 끝맺는 것입니다.

정리해보겠습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게 되었기에, 향후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한 모습에는 ‘나라이 임하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측면도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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