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5월 31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98문답

[질문] 기도가 무엇입니까? [기도] 기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요 16:23-24)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올리는 것인데(시 10:17; 62:8; 마 7:7-8), 그분의 뜻에 맞는 것을 구하고(마 26:39; 요일 5:14),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시 32:5-6; 66:18-19; 단 9:4-7, 19; 요일 1:9) 그분의 자비하심을 깨달아서 감사하는 것입니다(시 103:1-5).

제98문답부터 마지막 문답까지의 주제는 ‘주기도문’입니다. 개혁교회는 4대 신앙고백문답을 소유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제네바 교회 신앙고백문답,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웨스트민스터 대신앙고백문답,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등입니다. 이 문서들은 공통적으로 네 가지 주제를 포함하고 있는데, ① 십계명, ② 사도신경,  ③ 주기도문, ④ 성례 등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예외가 있는 것은 웨스트민스터 대소신앙고백문답은 사도신경은 다루지 않았습니다. 여기 98문답과 다음에 다루게 될 99문답은 ‘주기도문의 서론’ 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문제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기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그리스도의 중보를 의지하여야’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종교들마다 ‘기도’라는 요소를 신앙의 중요한 행위로서 다룹니다. 이는 기독교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본디 기독교만이 참된 종교인 것을 고려할 때에, 기독교의 기도만이 참된 기도일 것임은 당연합니다. 그러할 때에 기독교 신앙에서는, 다른 미신 종교들처럼 자신의 부귀영화를 구하는 행위를 배제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할 것을 가르치되, 반드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그렇게 그리스도를 힘입어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기꺼이 들어주신다는 데서 기독교 신상의 뛰어난 특성이 있는 것이로되,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해주신 것이므로, 우리로 하여금 실제로 기도할 수 있게 해줍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이 없을 경우, 우리의 기도는 사실상 미신 종교들에서의 기도 행위와 다르지 않게 될 것입니다.  

둘째,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올리는 것이로되,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을 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 문제에서 오늘날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혼란에 빠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대체적으로 ‘자기의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경향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기 개인의 문제를 놓고 구하는 행위란 아예 완전히 배척되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을 구한다’고 한 말씀의 진의는, 우리의 기도가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구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여러 수단들 중에서, 감히 기도까지도 불사할 수 있으리만큼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욕심을 위하여 구하는 기도는 응답을 얻기는커녕, 결국에는 시험에 빠져 오히려 죄를 낳을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약 1:15)

셋째, 기도에 있어서 ‘죄를 고백하는 것’은 중요한 요소이자, 사실상 기도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 짓기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통상 죄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라고 하신 것을 행하는 것과 ’하라’라고 하신 것을 해하지 않는 데서 생겨나게 됩니다. 가령, “우상을 섬기지 말라”라고 하신 말씀 앞에서는 어느 정도 순종해 나갈 수 있겠지만, 이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하신 말씀 앞에서는 항상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가를 절감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이란 하나님 앞에서 단순히 죄송하다, 송구스럽다 하는 정도로 끝날 것이 아니고, 구체적으로 회개해야 할 죄 문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라!’라고 하신 것은 확실히 우리의 순종을 요구하시는 명백한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 이것저것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을 쏟아내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명백히 명령하신 계명을 대놓고 불순종으로 일관하고 있는 자신의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이 더 시급합니다. 아마도 이 문제는 평생에 걸쳐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데 대한 확신이 되어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듭나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그렇게 하나님의 계명을 거스른 데 대한 용서의 간구는커녕, 아예 죄인이라는 의식조차 할 수 없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넷째, 기도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깨달아서 감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도로서는 실로 자신이 숨 쉬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우리의 죄값을 대신하여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하신 분이십니다. 바로 이 구체적인 사실과 관련하여, 비로소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한시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러한 토대 위에서 하나님께서 기타 부수적인 일체의 것들을 계속 베풀어주십니다. 세상 사람이 아닌 성도로서는 실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가 아니고서는, 그야말로 옷 한 벌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취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짓는 죄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공의의 하나님께서 인내에 인내를 거듭하시는 자비로써 우리를 대하신다는 것을 인정하지 아니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깨달아서 감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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