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5월 24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97문답

 

[질문] 주님의 만찬을 합당하게 받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대답] 주님의 만찬에 합당하게 참여하려는 사람은 주님의 몸을 분별하는 지식이 있는지, 주님을 양식으로 삼는 믿음이 있는지, 회개와 사랑과 새로운 순종이 있는지 스스로 살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합당치 않게 나아옴으로 자기에게 임할 심판을 먹고 마시게 됩니다(고전 5:7-8; 11:27-32).

제97문답은 주님의 만찬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자가 있는가 하면, 참석시킬 수 없는 부자격자가 있다는 데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첫째, ‘주님의 몸을 분별하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주님의 만찬의 거룩한 신비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먼저는, 물질적인 표징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써 우리의 미약한 능력으로 말미암아 보지 못하는 것을 나타내고, 다음으로는, 영적 진리(the spiritual truth)로 이것은 동시에 그 상징들에 의해서 표현되며 동시에 전시됩니다. 이 진리의 성격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자 할 때에, 첫째, ‘의미’와 둘째, ‘의미에 의존하는 본체’와 셋째, ‘이 두 가지에서 나타나는 힘 또는 효과’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① 의미는 약속에(in the promises) 포함되었으며, 약속은 표징에(in the sign) 내포되어 있고, ② 본체 또는 실체(the matter, or substance)는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며, ③ 효과(effect)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속과 의와 성화와 영생과 모든 다른 은혜들’(redemption, justification, sanctification, eternal life, and all other benefits)입니다. 이상을 한 마디로 표현할 때에 ‘영적 임재설’이라고 합니다. 이에 관한 지식이 정확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주님을 양식으로 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의 의미는 단순히 이해력과 상상력 차원에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식의 믿음이란 인정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는 주님의 만찬에서의 약속이 그리스도를 제시하는 것은, 성도로 하여금 외형과 단순한 지식에서 머물라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그에게 참예하며 즐기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참예하고 의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구속과 의를 소유하며, 어떻게 그의 죽음에서 생명을 얻음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을 것임은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만찬에서는 떡과 포도주라는 상징들에 의해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우리에게 제시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첫째는, 우리가 그리스돠와 한 몸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며, 둘째는, 그렇게 해서 그리스도의 본체에 참여하게 된 우리로 하여금 그의 모든 은혜에 참여함으로써 그의 능력도 느끼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자신에게 성립되었다고 확신하는 데서, ‘주님을 양식으로 삼는 믿음’이 ‘있다’라고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할 때에, 주께서는 그의 영으로 이 은혜를 주셔서, 우리의 몸과 영혼이 그와 하나가 되게 하시는데, 이러한 연결의 줄은 그리스도의 영이시며, 이 줄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와 하나가 되니,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영을 통해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했습니다(롬 8:9).

성도의 믿음은 ‘주님의 만찬시에 그리스도께서 계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떡에 고착시키거나 포함시키거나, 여러 조각을 만들어 여러 곳에 분배하거나, 하늘과 땅에 가득한 무한한 부피를 가진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생각들은 명백히 ‘그리스도의 진정한 인성(his true human nature)’에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여하간에, 첫째, 그리스도를 끌어내려 이 세상의 썩을 요소들 밑에 두거나 지상의 피조물에 고착시킴으로써 그리스도의 하늘 영광을 훼손하면 안 되고, 둘째, 그리스도의 몸은 무한하다든지 동시에 여러 곳에 계신다든지 하는 식으로, 그렇게 인성에 합당하지 않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상의 불합리한 생각들만 제거한다면, 주님의 만찬의 거룩한 상징들에 의해서 신자들에게 표시되는 바와 같이, 주의 몸과 피를 참으로 또 실질적으로 나눠 가지는 일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자들은 상상력이나 이해력만으로 받지 않고, 영생을 위한 영양으로서의 본체를 즐긴다는 것을 표현해야 합니다. 이상의 내용들은 모든 점에서 성경과 일치하여, 불합리한 점이나, 막연한 점이나, 모호한 점 등등이 전혀 없고, 진정한 경건과 건전한 교훈에 일치됩니다.  

셋째, ‘회개와 사랑과 새로운 순종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주께서는 우리에게 한편으로는 순결하고 거룩한 생활을,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과 평화와 화목을 권장하며 고취하는 가장 유력한 방법으로서 주님의 만찬을 제정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를 통하여 자신의 몸을 우리들에게 주셔서 우리와 완전히 하나가 되시며 우리도 그와 하나가 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만찬에서 제시되는 떡은 성도들 간의 단결을 표현하므로, 한 마음으로 일치단결해서 어떤 불화나 분열도 침입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고전 10:16-17). 성도들은 피차 지체들이므로, 자신의 몸과 같이 다른 이들의 몸도 돌보아야 합니다. 몸의 일부에 고통이 있으면 그것이 전신에 퍼지는 것과 같이, 우리는 한 형제가 어떤 곤란을 받으면 버려두지 말고 깊이 동정해야 하는데, 그에 따라 어거스틴은 성찬을 ‘사랑의 띠(the bond of charity)’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넷째, 이상 세 가지를 살피지 않을 경우 ‘합당치 않게 나아오는 것’이라고 했고, 따라서 ‘자기에게 임할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문제에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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