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5월 17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96문답

[질문] 주님의 만찬이 무엇입니까? [대답] 주님의 만찬은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대로 떡과 포도주를 주고 받음으로써 그의 죽으심을 나타내 보이는 성례입니다(눅 22:19-20; 고전 11:23-26). 주님의 만찬을 합당하게 받는 사람은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태도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여서 주님의 모든 유익을 받고, 신령한 양식을 먹고 은혜 안에서 장성합니다(요 6:53-57; 고전 10:16-17).

제96문답은 교회에 제정된 두 번째 성례인 ‘주님의 만찬’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이 문제로 들어가기에 앞서, 사실 주님의 만찬은 가급적 자주 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빈도수에 있어서 가히 매주마다 실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칼빈이 제네바 교회에서 본격적으로 목사로서의 직무를 시작하던 때에, 시급한 네 가지의 개혁사안들 중의 하나로서 제안한 데서도 잘 찾아집니다. 하지만, 그럴 수 있으려면, 교회 전체의 성숙성이 상당한 수준으로 뒷받침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일 년에 한 차례씩만 우리가 교제에 참여하게 하는 이 관습은, 누가 그것을 도입하였든 간에, 참으로 마귀의 고안이다”라고 선언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만찬을 존귀히 여기는 훈련이 부족한 현대 교회의 형편에서, 이 원칙이 지켜지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한 칼빈 자신도 이 벽(?)을 뚫지 못하고 1년에 4차례 시행하는 것으로 안타까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의 만찬의 의의를 생각하는 칼빈의 기본 입장은, 하나님께서 자애로운 아버지가 되셔서 자기의 자녀들을 평생 먹이신다는 데서 찾아집니다. 그래서 이것은 ‘영적 향연(a spiritual feast)’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 구속적 후의를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시려고 영적 잔치인 성찬성을 배설하셔서, 우리에게 생명의 떡과 음료를 먹이심으로 우리의 영혼이 진정하고 복된 영생을 얻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주님의 만찬의 특별한 결실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몸의 실체 그 자체가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임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육체적으로가 아니라, 오직 성신 안에서 영적으로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칼빈은 신자들이 이 신비를 바르게 깨닫고 믿으며 의지하는 것은 구원론적 근거를 갖는다고 보았습니다. 다음 네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주님의 만찬은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항간에 세족식이나 추수 감사절 같은 것을 성례나 절기로서 제정하는 것을 반대하는 선언입니다. 구약시대 때는 성례들의 종류가 다양했지만, 신약시대로 들어와 교회는 오직 두 가지의 성례만을 지키게 되었습니다(제93문답).

둘째, ‘주님의 만찬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나타내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사용된 떡은 주님의 육체를 상징하고, 포도주는 주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그런 식으로 주님의 만찬의 전체적인 의의는 주님의 죽으심을 나타내는 데 있는 것입니다. 이 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서 받는 보이지 않는 영혼의 양식을 표징하는 상징과 형상(figure and image)으로서, 보증과 증표들처럼(like earnests and badges) 주어진 것입니다. 주님은 이것으로써 우리를 당신의 부활생명에 참여케 하사, 우리로 하여금 신앙의 힘을 회복하여 하늘 영생에 도달할 때까지 몇 번이고 기운을 얻도록 해주십니다. 거기에 첨가된 약속의 말씀도 바로 이러한 뜻을 드러내려고,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고전 11:24; 마 26:26; 막 14:22; 눅 22:19)고 하셨고,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하신 것입니다(눅 22:20; 고전 11:25).

셋째, ‘주님의 만찬을 합당하게 받는 사람은 … 주님의 모든 유익을 받고, 신령한 양식을 먹고 은혜 안에서 장성한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새 언약을 제정하실 때에, “받아 먹으라 그리고 마셔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요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흘리는 나의 피니라”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몸과 피를 취하셨다가(성육신), 주님의 만찬으로서 다시 내놓으신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구원에 큰 유익을 주시려는 때문입니다. 먼저, 받으라고 명령하심으로써 그것이 우리 것임을 알리시며, 먹으라고 명령하심으로써 우리와 일체가 됨을 알리시고, 우리를 위해서 그의 몸을 주시며 피를 흘리신다고 언명하심으로써, 그 두 가지가 그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성찬의 효력의 강력한 것들이 ‘너희를 위하는’ 또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이라고 하신 말씀에 있다는 것을 각별히 주목해야 합니다. 주의 몸과 피를 우리의 구속과 구원을 위해서 실제로 주시지 않는 것이라면 지금 그의 몸과 피를 분배하는 의식이란, 실제적인 유익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로 이와 같은 일종의 유비(a kind of analogy)에 의해, 우리 앞에 놓인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영적인 것으로 인도되는 까닭에, ‘그리스도의 몸의 상징(a symbol of the body of Christ)’인 떡을 받는 사람으로서는 의당히 이 비교되는 유익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넷째,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태도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한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받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것은 실제로 그리스도에게 참여함으로써, 그러한 사실에 따라 생명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요 6:26 이하). 참여한다는 의미를 정확하게 하려고, ‘먹는다’와 ‘마신다’는 말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몸에 영양을 주려면 떡을 실제로 먹어야 하는 것처럼, 영혼도 그리스도의 힘으로 영적 생명을 얻으려면 그에게 참으로 또 깊이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믿는다는 것’뿐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믿음에 의해, 우리의 살과 피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실로 우리는 믿음에 의하여(by faith)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실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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