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5월 03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94문답

[질문] 세례는 무엇입니까? [대답]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에로 연합시키는 물로 씻는 성례입니다(마 28:19; 행 2:38; 고전 1:13, 15; 10:2; 12:13; 갈 3:27).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짐과 은혜 언약의 유익에 참여함과 주님의 것이 되기로 약속함을 표시하고 인 칩니다(행 2:38-42; 22:16; 롬 6:3-4; 갈 3:26-27; 벧전 3:21).

제94문답은 세례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이는 앞의 93문답에서 신약의 성례에 대해 세례와 주님의 만찬 두 가지라고 한 바에 따른 것입니다. 세례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첫째, 세례를 시행함에 있어서의 ‘두 가지 형식’, 둘째, 세례의 ‘세 가지 신학적 의미’, 셋째, ‘표시와 인으로의 의미’ 등으로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되었습니다.

첫째, 세례는 두 가지 형식으로서 시행됩니다. 먼저는 세례의 의미를 선포하는 것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에로”라고 한 선언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한국 교회는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문제에서 큰 오류에 빠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치 목사가 자기의 권위를 행사하여 세례를 베푸는 것인 양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룰 주노라!”라는 식으로 선언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전치사를 잘못 해석하는 데 따른 것으로, 헬라어 성경 원문에서 ‘~에로(into)’라고 한 것을 ‘~으로(in)라고 잘못 번역한 데서 그러한 무지막지한 오류가 생겼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순전히 번역상의 문제만이라기보다는 세례의 의미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부족한 데서 더더욱 그렇게 되어버렸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으로, 세례는 그것의 신학적인 성격에 비추어 형식에 있어서 지금처럼 ‘약식’으로 시행하게 됩니다. 오늘날 몸 전체를 물 속에 푹 담그는 형식을 고집하는 ‘침례교’라는 교단이 있습니다. 물론 ‘세례를 주다’(baptize)라는 말은 물에 잠근다는 뜻이며, 옛적 교회에서는 물에 완전히 잠그는 ‘침례’도 행한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세례는 명백히 상징이기 때문에, 세례를 받는 사람을 완전히 물에 잠그느냐, 세 번 잠그느냐, 한 번만 잠그느냐, 또는 물을 뿌리기만 하느냐 하는 등등의 형식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둘째, 세례에는 세 가지 신학적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세례는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접붙여진다는 것의 좀 더 신학적인 표현은 ’신비적 연합’입니다. 부활하신 가운데 천상에 좌정해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 연합되는데 따라, 신자에게는 죄 용서 및 의의 전가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상징합니다. 즉 깨끗하게 씻는다는 점에서 유사하기 때문에 피를 물로 대신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은혜언약의 유익에 참여합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게 된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자녀인 사실이 증명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갈 3:26-27). 끝으로, ‘주님의 것이 되기를 약속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고전 1:13). 바울의 의미인즉, 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께 몸 바쳐 충성을 맹세하고, 사람들 앞에서도 그리스도께 충실하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례는 사람들 앞에서의 자신의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것이 됩니다. 참으로 세례라는 표지에 의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되고 싶다는 소원을 공포하며, 모든 그리스도인과 함께 같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같은 교리를 믿는다는 것을 증거하고, 끝으로, 우리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합니다. 이렇게 해서, 성도는 마음과 혀와 지체로써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본받게 하는 삶을 삽니다.

셋째, 세례는 ‘표’와 ‘인’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실체가 아니라, 신학적 진리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세례를 어떻게 사용하며 또 어떻게 받아야 하는가를 잘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례는 우리에게서 믿음을 일으키고, 자라게 하고, 강화하기 위해서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례를 받는 사람은, 그것을 제정하신 분의 손에서 직접 받는 것처럼 받아야 하는데, 즉 그러한 표징을 통해서, 주께서 친히 실상을 말씀하시는 사실에 성립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실로 영적인 것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나타내는 것이므로, 그러한 물질을 통하여 영적인 진상을 마치 눈 앞에 있는 듯이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그러한 표를 이용하여, 우리에 대한 호의, 즉 모든 영적 은혜를 풍성하게 베풀어 주신다는 데 대한 확증인 것입니다. 그러한 외형이 상징하는 신학적 진리가 우리에게서 실제적으로 효력을 나타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세례로 말미암아 우리의 믿음에 세 가지 혜택이 있게 되는데, 첫째, 우리가 깨끗함을 받은 증거가 되고, 둘째,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새 생명을 얻는 것이며, 셋째,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증거가 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반드시 말씀 선포가 수반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세례식 그 자체만으로는 허접한 의식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성령께서 선포된 말씀을 도구로 쓰셔서, 말씀의 의미가 수세자에게서 효력이 나타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례의 성격상 세례를 다시 주고 받는 일은 무의미합니다. 만일 세례를 받은 뒤에 죄를 범하게 되면, 세례를 다시 받을 것은 아니고, 처음 때의 기억을 새롭게 하여 더더욱 분발해 나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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