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4월 05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90문답

[질문]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읽고 들어야 그것이 구원을 위하여 효력 있게 됩니까? [대답] 하나님의 말씀이 구원을 위하여 효력 있게 되려면 우리는 부지런함과 준비와 기도로써 말씀에 집중하며(신 6:16-19; 시 119:18; 잠 8:34; 벧전 2:1-2), 그 말씀을 믿음과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마음에 간직하고, 우리의 생활에서 실천해야 합니다(시 119:11; 눅 8:15; 살후 2:20; 히 4:2; 약 1:22-25).

제89문답의 핵심사항은 하나님의 말씀은 성신께서 쓰시는 데서만 성도에게서 ‘구원의 효력’이 발생한다는 데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할 때에 특별히 예배 시에 선포되는 설교 말씀에 초점을 맞추어 그렇게 도구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성도로서 예배에 참석하여 목사가 선포하는 설교를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는 말씀으로서 받아들이게 되는 데서, 말씀을 도구로 사용하시는 성신의 역사가 보다 더 정확하고 보다 더 효과적이기 마련이다 하는 신앙고백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성도로서는 교회적인 자리매김이 정확하면 정확할수록 상대적으로 성령충만한 삶을 사는 데 대한 증거가 되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성도 속에 활성화시키시는 생명력은 다름 아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인 때문이로되, 이 주님의 생명력은 성도들이 상호간에 연합함으로써 이루어는 교회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90문답은 성도가 삶의 일상성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믿고 의지할 것인가에 집중합니다. 이는 성도가 성경을 개인적으로 읽고 연구하는 가운데 깨달음을 얻고, 그렇게 순종해 나가는 데서도 성령께서는 역사하시기 마련인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어떻게 읽고 들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 것인데, 그러할 때의 답변으로 ’구원을 위하여 효력이 있게 됩니까’라고 한 바를 유념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성신께서 쓰시는 도구가 되어 성도의 삶에 유익이 되는 것은, 전적으로 ’구원을 받고, 구원을 누리는 주제’와 관계된 것이지 다른 것일 수 없습니다. 물론 여기서 구원을 받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미가 명확할지라도 ‘구원을 누린다’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삶이란 것은 구원의 생활과 일상의 생활이 무슨 나무토막과도 같은 모습으로 두 개로 딱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비록 구원 받았다 할지라도 여전히 자연인으로서의 생명력에도 사로잡혀 있기 마련이고, 때에 따라서는 성령의 소욕이 아닌, 육체의 소욕을 따라 행하는 바가 무척이나 두드러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성경은 육체의 소욕을 좇아 행하지 말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하라고 하는 명령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한다고 할 때에, 그것은 말씀을 좇아 행한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는 데 대해서는 앞서 이야기한 바와도 같습니다. 그러할 때에 말씀을 좇아 행한다 하는 의미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읽고 들어야 그것이 구원을 위하여 효력 있게 됩니까?”라고 한 바에 대한 대답과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첫째, 말씀에 대한 신뢰가 정확하고 명확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고, 말씀으로 인하여 구원이 자라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서 두리뭉실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부지런함과 준비와 기도로써 말씀에 집중하라(신 6:16-19; 시 119:18; 잠 8:34; 벧전 2:1-2)’라고 한 바의 의미입니다. 말씀에 대한 신뢰가 확실하지 않으면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말씀대로 살면 좀 더 신앙적이겠지만, 그렇지 못할지라도 무슨 큰 문제가 되겠는가 하는 정도이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정확하게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시고 요구하시는 행위 바로 그 자체임에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말씀을 읽거나 듣는 바로 그 순간에만 그런 관계가 성립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살아 있고 권위가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한 나라에서의 헌법은, 백성이 지키든지 아니 지키든지 간에 법으로서의 권위가 작용하는 원리와도 같습니다.

둘째, 다음으로 그렇게 해서 깨달음을 얻는 바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그 말씀을 믿음과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마음에 간직하고, 우리의 생활에서 실천해야 합니다(시 119:11; 눅 8:15; 살후 2:20; 히 4:2; 약 1:22-25)’라고 한 바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거나 듣거나 연구하는 목적이나 의도가 무엇입니까? 결코 지적 유희를 위해서가 아닌 것입니다. 지적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라면 더 재미 있고 더 흥미 있는 책들이 얼마든지 있으므로, 차라리 그런 책들을 읽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지적 즐거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물론 성경을 읽을 때 지적 즐거움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푸신 사랑을 깨닫게 되고, 죄 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데 대한 지식은 분명 성도에게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기 마련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성경 말씀이 요구하는 바를 명확하게 깨닫고, 그것을 애써 순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데 따라 자신에게 구원이 임해 있는 사실도 명확해지는 것이므로, 이 역시 성경이 주는 즐거움이라 아니할 수 없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정리하자면, 성도는 성경이 구원의 방편임을 적극 신뢰하여야 하고, 그에 따라 열심히 순종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더 이상 불신자가 아니요, 구원 받았기 때문에 능히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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