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3월 22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88문답

 

[본문]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속의 은덕을 끼치시는 데 쓰시는 통상적인 방도는 무엇입니까? [대답]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속의 은덕을 끼치시는 데 쓰시는 통상적인 방도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정하신 것인데, 특히 말씀과 성례와 기도입니다. 이 모든 것이 택함 받은 사람들에게 구원을 위하여 효력 있게 됩니다(마 28:18-20; 요 3:5-16; 행 2:41-42, 46-47; 약 1:18; 벧전 1:23).

제88문답은 앞서 85문답에서 고백된 세 가지 방편들 중에 마지막 내용을 심화시키는 것으로 주제는 ‘은혜의 방도’에 관한 것입니다. 여기서는 개괄적인 답변으로서 제시하고, 이어서 본 소신앙고백문답 마지막 부분까지 좀 더 구체적으로 심화시켜 말씀(89-90문답)과 성례(91-97문답)와 기도(98-107문답)를 다루게 됩니다. 개혁교회는 은혜의 방도 및 방편과 관련하여, 첫째, 말씀의 온전한 선포, 둘째, 성례의 순수한 시행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여기에 훈련의 능력적 실천을 더하면, 교회의 삼대 표지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 소신앙고백문답은 기도에 대해서도 은혜의 방도라고 했습니다. 개혁교회 3대 신앙고백문답들 중에, 제네바 신앙고백문답은 기도를 ‘예배의 요소’로서 다루되,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은 기도를 ‘감사의 방편’으로서 다루는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된 지체들에게 끼치시는 구속의 은덕을 잘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리스도께서 어떤 방법을 쓰시는가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할 때에 기독교 신앙에서 방도 또는 방법 혹은 수단이이라는 용어는 세상에서 사용하는 통상적인 방법과는 다르다는 것을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 차이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앞의 두 가지 또는 세 가지 용어가 세상에서 사용될 경우, 이는 명백히 어떤 목표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을 가리킵니다. 가령, 갑이라는 지점에서 을이라는 지점까지 이동한다고 할 때, 그렇게 이동함에 있어서 버스나 택시 또는 지하철 같은 것을 이용할 경우, 여기서 ‘을’은 목표이고, 버스와 택시 및 지하철은 ‘수단’이나 ‘방법’이게 됩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에서의 방도 및 방편은 세상의 의미과 확실한 차이가 있습니다. 즉 여기서 ‘구속의 은덕을 끼친다’고 했을 때, 끼친다는 것은 베푼다, 제공한다 등의 의미로서 정확하게는 ‘구원을 누리(즐기)는 방법’을 가리킵니다. 지금 구원을 얻는 방법이라고 하지 아니하고 ‘구원을 누리고 즐기는 방법’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뒤이어지는 내용을 통해서 ‘말씀’의 의미에 대해 구원을 얻는 방법 차원에서 전개해 나갔을지라도, 동시에 이미 받은 구원을 어떻게 활성화시켜 나가야 하는가가 주된 의미임을 명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엄격히 말해서, 사람 편에서는 그야말로 죽었다 깨어나도 스스로 구원을 받거나, 얻어낼 재간이 없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88문답의 답변 역시 “… 이 모든 것이 택함 받은 사람들에게 구원을 위하여 효력 있게 됩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기도가 포함된 것에 대해 이렇게 구원을 누리고 즐기는 차원에서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예배 시에 목사로 하여금 말씀을 선포케 하심으로 당신의 자녀들에게 구속의 은덕이 되게 하십니다. 이 문제는 다음 문답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참조. 89-90문답). 우선 한 가지 사실만큼은 확실하게 해두어야 합니다. 성도는 자기 스스로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차원보다는, 교회 공동체로서의 한 몸이 되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의식 하에서, 비록 목사의 입을 통한 방식이지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직접 말씀하시는 법이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예배라고 하는 의식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데 성립되어 있지 못할 경우, 기타 다른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은혜의 방도가 될 재간이 없는 법입니다.  

둘째,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구속의 은덕을 끼치시는 방편으로 성례를 제정하셨습니다. 성례는 세례와 주님의 만찬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참조. 91-97문답). 세례는 교회 앞에서 공적으로 주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할 때, 단 한 번 받는 예식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접붙여지는 방식으로서,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속하게 되는 예식인 것입니다. 주님의 만찬은 이미 세례를 받은 사람들만이 수시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동적으로 참여할 수는 없고, 참여할 때마다 자신의 자격 또는 상태를 잘 살펴볼 것이 요구됩니다.

셋째, 기도는 구원의 방편 차원에서보다는, 그야말로 그리스도께서 이미 베푸신 구원을 누리고 즐기게 해주는 매우 유효한 수단이라는 차원에서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도는 기도로써 하나님께 자신의 처지와 형편을 아뢸 수 있고, 필요한 것을 주십사고 간청할 수도 있고, 혹 지은 죄가 있다면 회개하여 용서 받을 수도 있게 됩니다.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옳은가를 보여주는 기도의 만고불변의 모범은 단연 '주기도문'입니다(참조. 98-107문답).   

끝으로, 이상의 것은 오직 ‘택함을 입은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다시 말해서 효력이 발생하는 역사입니다. 가령,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 하는 기도는, 당연히 미신들의 그것과 같아서 아무 효력이 없을 것임은 당연합니다.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은 세례를 못받는 것은 당연하고, 그렇다면 주님의 만찬 참여에 있어서는 더더욱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도 없는 법입니다. 자신의 예배가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효를 힙입어야 하는 것은, 구원자이신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구원의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간혹 교회의 공적 예배에 불신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그렇게 설교를 듣는 것을 통하여 주님께 대한 신앙과 회개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러한 예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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