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3월 01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85문답

[본문]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마땅히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피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마땅히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피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하며(잠 28:13; 막 1:15; 행 20:21), 우리에게 구속의 은덕을 끼쳐 주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쓰시는 모든 방도를 부지런히 사용하는 것입니다(잠 2:1-5; 잠 8:33-36; 사 55:3; 행 2:38; 고전 11:24-25; 골 3:16).

앞의 84문답은 죄에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의 필연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여기 85문답에서는 ‘죄값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이 죄값을 지고 심판을 받는 것을 참아 보지 못하시리만큼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죗값을 대신 지우신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와 같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에외없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한 바와 상관없게 되는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요 3:16-17)라고 한 말씀은 우리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고, 그야말로 두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보화가 되는 말씀이겠습니까?

하지만 이것을 요즈음 유행하는 바처럼 일종의 구호처럼 이해하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죄값이 면제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믿는다는 말의 의미는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 매우 훌륭하고 유익한 효과적인 진리를 내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진리,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의 의미가 실로 ‘간단 신앙주의’ 차원으로 격하되고 있는 현대의 풍토는 정말 사탄의 무서운 궤게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구원파 이단만 그렇게 하는가 싶더니만, 어느 사이엔가 사설 선교회들에 의한 영향가지 더해져 이제는 아예 교회 안에서 정석처럼 자리잡고 있는 실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되 진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즉 시인이나 긍정 차원이 아니라, 생명처럼 여기는 고백의 의미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앙이 진실하다면 필히 회개가 수반되기 마련입니다. 여기서의 히개란 어느 한 순간에 죄를 뉘우치거나 반성하는 정도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회개란 평생에 걸쳐 하는 것으로서, 곧 이제까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아왔던 삶을 돌이켜, 이후로는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데서 정의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가 이렇게 산다면서 장담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의 신앙이란, 평생에 걸친 자기 자신의 정욕 및 세상의 유혹과 맞서 싸우는 전투에 임해 있다는 데서 찾아지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참된 회개는 진정한 신앙에서 우러나오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알기에, 그것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으로서는 그 동안 자기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살아나왔던 모든 것이,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간에, 사실상 죄악 덩어리였음을 깨닫기 마련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데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으리만큼의 갖가지 죄악들을 범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회개에서 엿보이고, 회개는 신앙에서 엿보인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면 신앙과 회개가 지향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제1문답에서 “사람의 최고봉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한 데서 대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란 동물과 현저히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먹고 마시고 놀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데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에게서의 진정한 행복이란, 하나님의 창조주물로서의 참된 가치의 인격 활동을 하는 데 달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죄로부터 구원 받은 성도는 향후 더 이상 죄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한 중에 가장 시급한 것은, 자신의 거듭난 생명력이 실로 죄를 이기는 권세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토대에 성립되는 것인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한 지체로서 굳게 자리매김을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교회의 품에 안겨서 교회로부터 양육을 받을 때에, 비로소 성도의 거듭난 생명력은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법이기 때문인데, 이는 그러한 데서 가장 최상의 상태의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성화의 삶을 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의 자녀들로 삼아 자기에게 속하도록 따로 분리하신 바, 성령의 특별한 섭리와 인도하심의 영역에 속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니, 다름 아닌 교회 공동체인 것입니다. 성도는 예외 없이 고립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교회의 교제 안에서, 교회의 지체로서,  그런 식으로 성신의 은사에 참여하게 됩니다. 교회를 떠난 상태에서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신앙과 회개의 삶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은, 뜬구름 잡는 사람들의 망상입니다.

이상의 사실이 제85문답에서 “우리에게 구속의 은덕을 끼쳐 주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쓰시는 모든 방도를 부지런히 사용하는 것입니다”라고 한 바에 대한 궁극적인 설명입니다. 모름지기 “하나님께서는 각 개인에게 개별적으로 성령을 주시는 법이 없으시다”라고 명제는 여전한 성경의 진리입니다. 자신이 개인적으로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것은, 오직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은사를 함께 나누어 갖는 실질에 참여하는 데 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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