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2월 02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81문답

[본문] 제10계명이 금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10계명이 금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불만스러워 하고(왕상 21:4; 고전 10:10; 약 3:14-16) 이웃의 잘됨을 시기하고 원통하게 여기고, 이웃의 것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부당한 마음과 욕심을 품는 것입니다(롬 7:7-8; 갈 5:26; 골 3:5).

제81문답은 십계명의 열 번째 계명에 대한 부정명령을 다룹니다. 이 명령을 끝으로 제40문답부터 진행되어져 나온 무려 42개 항목에 걸친 ‘십계명’과 관련한 신앙고백문답을 마감하게 됩니다. 칼빈은 이 열 번째 계명에서 “비록 ‘탐내지 말지니라”라고 한 말씀이 반복되긴 했어도, 둘로 쪼갤 수 없는 한 계명이라면서, 타인의 재물을 상해와 속임수로 빼앗는 것을 금하는 것은 물론이고, 탐심에 마음이 사로잡히는 것조차 금하신다”고 파악했습니다. 그가 보기에, 하나님을 명상해야만 사랑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과 공경을 토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면, 둘째 판에 있는 의무들을 단지 권위만을 앞세워 가르치는 것은 효과를 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긍정명령 못지 않게 부정명령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성도로서 반드시 금해야 할 세 가지 원리를 제시합니다.

첫째, ‘자신의 처지를 조금도 불만스러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신앙에 있어서 매우 기본적인 자세여야 합니다. 자신이 범법한 데 따라 스스로 자초한 공의의 징계가 아닌 한, 하나님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대우를 하신다는 생각에서 한시라도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아니, 좀 더 성숙한 신앙인이라면, 자신이 계속 부패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나아가 사실상 연일 불순종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데 대한, 하나님의 관대하심은 너무도 크시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원리는 억지로 ‘그런 척하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명백히 하나님의 작정이 ‘언약’이라는 수단으로 통하여, 하나님과 자신 간에 맺어져 있고, 지금이라고 하는 신앙의 현실로서 계속 이어져 나가고 있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이 ‘관계’라는 측면을 고려하는 한, 자기로서는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의 관대하신 용서와 자비를 넘치게 받고 있는 것이라는 데 대한 믿음과 확신과 그로 말미암은 감사의 고백에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는 모름지기 자신의 처지를 조금도 불만스러워 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이웃을 시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기심은 탐심의 발로입니다. 이 역시 사람에 대한 그릇된 태도이기 이전에, 하나님께 대한 불평 및 비난이 될 수 있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웃의 형편에 대해서도 주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서도 자기의 자녀들이나 휘하의 사람들에게 각기 성격과 형편 및 실력을 고려하여 적절히 대우할진대,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더 세밀하고 얼마나 더 섬세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웃이 번영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되어지는 일인 것이므로, 그것을 시기해서는 안 됩니다. 시기하게 될 경우, 이내 탐심이 깃들 것이고, 더 나아가 ‘구체적인 범법 행위’로까지 연결될 것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고전적인 예화는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 및 누가복음의 므나 비유입니다. 일거리가 없어서 놀고 있는 입장일 때는, 누가 아무 일이라도 시켜만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자기보다 늦게 온 사람이 자기와 똑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을 본 순간, 그만 시기심이 발동하여 ‘스스로 만족해야 하는 원리’를 단 번에 내던져버린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실물을 보게 되면 그것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고 한 고사성어의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한 바와 비슷하게도, 타인이 잘 되는 것을 보는 순간에 밀치고 일어나는 시기심을 잘 다스실 수 있어야겠습니다.

 셋째, ‘이웃의 것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부당한 마음과 욕심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 ‘부당하다’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이치에 맞지 아니하다’는 의미입니다. 공연히 이웃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마땅치 않게 여기는 태도는 절대적 금물입니다. 하물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것은 그들의 것이고, 나의 것만이 나의 것일 뿐입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가장 지혜로운 판단에 따라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웃의 것에 대해 부당한 마음과 욕심을 품는 이 일이, 이제 터무니 없게도 교회들 간의 경쟁 의식 및 시기심으로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데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전도만능주의를 전가의 보도처럼 삼는 바, 소위 세계 제일의 교회를 지향하는 경우를 보십시다. 물론 굳이 다른 교회들 간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에서도 이러한 심각한 현상은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가령, 직분자를 선출할 때에 아무 문제 없이 잘 마무리 되는 경우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후유증이 나타나곤 하는데, 부정과 불법 문제도 문제이려니와 상대방에 대한 ‘시기심’ 및 ‘경쟁의식’이 그 원인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모름지기 성도로서는 항상 자신의 처지에 대해 만족하고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할 때라야 어떠한 경우에도 이웃의 것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부당한 마음과 욕심을 품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 계명은 단순히 도덕성 향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맺고 있는 ‘언약의 관계’에 대한 ‘신앙적 응답’을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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