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1월 26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80문답

[본문] 제10계명이 명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제10계명이 명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처지에 온전히 만족하며(시 34:1; 빌 4:11; 딤전 6:6; 히 13:5), 우리 이웃과 그의 모든 소유에 대하여 정당하고 잘되기 바라는 심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눅 15:6, 9, 31-32; 롬 12:15; 고전 13:4-7; 빌 2:4).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 제80문답은 십계명의 열 번째 계명을 적극적으로 성취해야 할 것에 대한 신앙의 명령입니다.  이것에 대해 두 가지 원리를 제시합니다. 첫째는, 스스로 ‘만족하는 원리’입니다. 즉 바울이 말한 바대로 ‘자족하기를 배웠나니’(빌 4:11)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박한 소망조차도 금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근면 성실하게 노력하는 동시에, 삶의 안전성을 위해서 건전한 계획을 세우고 성취해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고 권장할 만함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진정 소박한 소망이라기보다는 대체적으로 욕심인 경우가 많다는 데 있습니다.

자신의 소망이 신앙적 삶을 위한 진정한 지혜의 발로인지, 반대로 소망을 빙자한 사실상의 욕심인지는 어떻게 분별이 되는 것이겠습니까? 기준은 감사하는 마음과 만족해 하는 마음에서 찾아질 것입니다. 감사와 만족할 수 있으려면,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의식주를 돌보시는 분이시라는 데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을 발휘해야 합니다. 탐식과 욕심은 물론이고 심할 경우 죄의 경계를 넘어가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부족에 기인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날 이 말은 매우 추상적으로 약화되어가는 경향이지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재우시는 일은 우리의 믿음에 달린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본성상 그렇게 하시기 마련인 때문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용문이 길지만, 너무도 중요한 말씀이므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25-34).

예수님께서 친히 해주신 이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는 사람은, 자기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 결국에는 죄의 경계를 넘어서게끔 하는 탐욕과 욕심을 능히 떨쳐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원리는 ‘이웃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구속사관을 가져야 합니다. 즉 좌우 옆과 앞뒤에 있는 지체들은 사실상 피를 나눈 육신의 형제들만큼이나, 아니 혹 그들이 신앙이 없을 경우, 그렇다면 그들보다도 더 친밀한 관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경우, 그렇게 고백하는 다른 형제자매들과 영락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한 지체로서 연락하고 상합하게 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실로 여기 대답에서 “우리 이웃과 그의 모든 소유에 대하여 정당하고 잘되기 바라는 심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라고 한 말씀은 중요한 원리를 전제한 것입니다. 즉, 성도는 필히 다른 지체들과 연결되어 있는 사실 때문에 ’자신’에게 구원도 이루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성도는 개인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성도들 개개인이 아닌, 교회 공동체를 구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의 신앙을 시험하고 점검해 볼 수 있도록, 매우 효과적인 기준을 제시하십니다. 곧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20)라고 하신 것이 그렇습니다. 바로 눈 앞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은, 단연 그들 역시도 자신처럼 예수 그리스도께 연합되어 있다는 데 대한 확실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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