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1월 05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77문답

[질문] 제9계명이 명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제9계명이 명하는 것은 사람 사이의 진실함과 자기 자신과 이웃의 명예를 유지하고 증진시키라는 것이고(슥 8:16-17; 행 25:10-11; 요삼 12), 특별히 증언할 때에 그리하라는 것입니다(잠 14:5, 25).

제77문답에서는 십계명의 아홉 번째 계명에 대한 적극적인 명령을 다룹니다.  흔히 세상살이의 3대 거짓말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장사꾼이 “손해보고 판다!”고 하는 말과 어르신들이 “빨리 죽고 싶다!”고 하는 말과 처녀가 “시집가지 않겠다!”고 하는 말 등입니다. 요즈음은 두 개를 더 추가시킨다고 합니다. 오래 간만에 만난 사람에게 “언제 밥 한 번 먹자!”고 하는 말과 아주 오래 간만에 만난 친구에게는 “너, 몰라보게 젊어졌다!”고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두 경우는, 딱히 거짓말이라기 보다는 일상적 인사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거짓말의 유형 중에서 ‘며느리의 3대 거짓말’이라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어머니 같은 시어머니가 되고 싶어요!”라는 것이고, 둘째는, “집으로 전화 드렸는데 안 받으시더라고요!”라는 것이고, 셋째는, “벌써 가시게요? 좀 더 있다 가시지요!”라는 것이랍니다. 그리스도인 며느리로서는 이런 거짓말을 서슴지 않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혹 하지는 않을까 싶습니다. 형평상 ‘남편들의 3대 거짓말’도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첫째는, 신혼시절에 “오늘 일찍 들어갈게!”이고, 둘째는, “술 담배 끊고 살 뺄 거야!”이고, 셋째는 “밥값 내가 내지 않았어!” 등이라고 합니다. 거짓말이 몸에 베어 있는 증거이겠습니다. 거짓말이란 것이 우리네 일상에 이런 정도로 깊숙이 스며 있는 것을 고려하건대, 누군가가 “나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할 경우, 그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를 신앙의 영역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성도로서 가장 쉽게(?) 범하는 동시에 매우 심각한 거짓말은 아무래도 교회 앞에서 공적으로 한 신앙고백을 저버리는 모습에서일 것입니다. 더욱이 이러한 모습은 부분적이라기보다는 가히 신앙 자체에 대한 부정이라고까지 판단될 수 있을 정도라는 데서 문제가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즉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 4:20)라고 한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이야기를 왜 하는가 하면, 여기 77문답에 대한 답변으로 “제9계명이 명하는 것은 사람 사이의 진실함과 자기 자신과 이웃의 명예를 유지하고 증진시키라는 것이고, 특별히 증언할 때에 그리하라는 것입니다”라고 한 데서 보듯이, 지금 ’증언할 때에’라고 한 때문입니다. 세례를 받을 때에 교회 앞에서 한 신앙고백은 명백히 하나님을 상대로 증언한 것임에 다름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상대로 자신의 증언을 뒤집는 사람이라면, 사람을 상대로는 얼마나 심하겠는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고백은 명백히 증언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로서 공적 신앙고백에 신실치 못할 경우 이는 분명 하나님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게 되는 것이요, 따라서 이는 하나님의 명예를 유지하고 증진시켜야 할 적극적인 의무를 저버린 것입니다. 평소 일상의 신앙생활에서 신앙고백에 신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하다면, 혹 이웃을 위하여 증언할 일이 생길 때, 평소에 진실하게 살아나온 삶의 저력으로써, 어떠한 유혹이나 회유 및 손해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진실을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거짓 증언으로 말미암아 상대방의 인생 전체를 엉망이 되게 하는 경우가 그리 희소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법정에서 증인의 말을 듣고자 할 때에, 그에게 선서를 시키는 것이 이런 때문입니다.  

그러면 통상 사람들은 왜 거짓말을 합니까? 아마도 ‘즐거움을 위해’ 또는 ‘재미 삼아’ 그리고 여러 다른 이유들이 있을 것입니다. 혹은 자신의 죄를 숨기기 위해, 또한 창피함을 피하려고 그렇게 하기도 합니다. 물론 다른 사람을 증오하고 질투하기 때문에, 혹은 사업 거래에서 부당한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실례를 계속 들자면, 너무 많기 때문에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지, 거짓 증언을 제공하거나 거짓 말을 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가 쉽지 않을지 모릅니다. 보통 ‘작은 거짓말’ 또는 ‘하얀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들 역시 하나님께서 좋게 보시지 않을 것임은 당연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설혹 전도를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거짓으로 감동을 주는 것’도 절대적으로 금해야 할 죄악입니다. 통상 간증을 마치 직업처럼 하고 다니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죄가 나타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일반 성도로서도 복음을 전할 때에 어느 한 순간에 거짓말을 섞을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상대방을 설득시키고 싶어한 나머지 거짓말로 복음에 자신의 거짓말 섞는 경우가 실제로 한둘이 아니지 않습니까? 더욱이 하나님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감찰하는 분이시라고 강조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성신께서 진리의 말씀을 들어 쓰신다는 데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모든 말과 행동에는 진실을 사랑하는 모습이나 자세가 풍겨나야 합니다. 성도는 이웃의 명성을 존중해야 하고, 그를 향한 어떠한 험담을 하지 않는 것 못지 않게 일체의 거짓말과 속임수를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진리의 원천으로서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재판장이시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을 즐기는 자들은 사탄과 마귀들과 더불어 불타는 못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계 21:8;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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