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4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55문답

[질문] 제3계명이 금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제3계명이 금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나타내시는 데 쓰시는 것을 속되게 하거나 잘못 사용하는 것입니다(레 19:2; 말 1:6-7, 12; 2:2; 3:14; 마 5:33-37; 약 5:12).

제3계명을 시작하면서 먼저 착잡한 마음부터 몰려옵니다. 사실상 오늘날 이 계명에 대한 위반은 그야말로 사방팔방에서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대체적으로 죄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런 것이기는 하지만, 모르고 짓는 죄도 죄임에는 틀림없다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어떻게 보면 그렇게 모르는 상태 그 자체가 죄일 수도 있는데, 이는 칼빈이 “무지도 죄다!”라고 한 바와 같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대답을 보십시다. “제3계명이 금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나타내시는 데 쓰시는 것을 속되게 하거나 잘못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나타내시는 것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생각해 보고 말 것도 없이 단연 성경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자기를 나타내십니다. 물론 성경 그 자체가 그렇다는 의미가 아니고, 정확하게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대하는 방식으로 인간은 자기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과 조우하게 되는 것이고, 이 말씀에 순종하는 데서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 응답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 수단인 말씀을 ‘속되게 하는 행위’와 ‘잘못 사용하는 행위’에 대해 명백히 제3계명을 통해서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라고 하신 데 대한 거역 행위가 된다 하는 말입니다.

먼저, ‘속되게 하는 행위’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여기서 ‘속되다’고 한 것은 ‘신성을 더럽힌다(profaning)’고 한 바를 좀 더 현실감을 살려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한 분이십니다. 여기서 거룩하다고 하신 바를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으려면, 하나님은 이 세상과 완전히 구별되어 계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성도’라는 이름을 붙여 주시면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레 19:2)라고 하시는데, 이는 세상에서 따로 ‘구별되어 있는 자답게 살라’는 의미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거룩한 삶을 사는 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적극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불순종’의 반대 차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모든 것’이 반영되어 있으므로, 이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일 경우 당연히 세상과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는 것이므로, 그런 정도로 하나님의 거룩성을 닮아 있게 되는 것임을 자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이러한 용도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오직 이 한가지 용도를 벗어나는 일체의 태도와 행동은 사실상 ‘성경을 속되게 사용하는 것’임에 다름이 아닌 것이고, 그런 식으로 사실상 ‘신성을 더럽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음으로, ‘잘못 사용하는 행위’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이것은 앞 부분을 강조하기 위하여 반복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사용하는 실례는 주변에 넘쳐납니다. 가령, 성경에서 특정 구절을 뽑아 액자와도 같은 장식품을 만드는 행위는 대표적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몸에 입고 다니는 티셔츠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디자인의 일환으로 사용합니다.  더욱이 명백히 돈을 벌기 위한 상품으로 이런 물건들을 만드는 데서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보니, 하나님의 말씀이 터무니 없는 의미로 변질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실례를 들어 보자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라고 한 말씀을 예쁘게 모양을 낸 액자에 이런저런 필체로서 장식한 다음, 성도들의 사업장 같은 곳에 턱 걸어놓은 모습을 심심찮게 보는데, 이런 경우는 말씀을 아예 잘못 해석하고 적용한 대표적인 실례일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말씀을 세속화시킨 전형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잘못된 해석인 것은 ‘그 내용’이 수아 사람 빌닷이 욥을 공박하기 위하여 사용한 자기 자신의 논증의 한 부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직접 계시셨다거나 정확하게 보증하신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더욱이 그것을 자신의 사업장에 걸어 놓는 행위는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을 ‘미신쟁이들’이 부적처럼 사용하는 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사용하는 행위’는 목사의 설교를 통해서도 주도적으로 자행된다는 데서 우리의 각별한 경각심이 요구됩니다. 즉 이것은 목사가 성경 말씀을 잘못 해석하는 경우이겠고, 나아가 자신의 특정 의도에 따라 성경 말씀을 취사선택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신학 훈련을 정상적으로 잘 받고, 신앙고백이 투철한 목사의 경우 성경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사용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잘못 해석하는 경우도 그리 쉽게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부흥회를 위하여 여기저기를 쉬지 않고 떠돌아 다니는 ‘행상꾼 목사들’의 경우는 영락없이 이 죄를 노골적으로 자행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 말 성경에 ‘혼잡하게 한다’로 번역된 말씀의 참된 의미는 ‘행상꾼 노릇을 한다’(고후 2:17)는 의미임을 유념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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