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11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56문답

[질문] 제3계명을 지킬 이유로 이어서 말씀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제3계명을 지킬 이유로 이어서 말씀하신 것은 이 계명을 범하는 자들이 비록 사람의 형벌은 피할 수 있어도,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은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신 28:58-59; 삼상 2:12, 17, 22, 29; 삼상 3:13; 4:11).

소신앙고백문답 제56문답은 제3계명 준수의 엄중함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는 “… 사람의 형벌은 피할 수 있어도,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은 피할 수 없다”고 한데서 명백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제3계명을 위반하는 자들에 대해 심히 불쾌히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 대적하시면 그 누구도 당할 자가 없다는 원리를 놓고 볼 때, 다시 한 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은 피할 수 없다”고 한 고백은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제3계명을 잘 지킬 수 있으려면 특별히 세 가지 점을 준수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께 대한 마음의 생각과 입술의 표현은 항상 하나님의 탁월하심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의 위엄에 부합하며, 하나님의 엄위를 찬양하는 데 이바지해야 합니다. 성도들과의 대화 중에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주제가 될 경우가 많습니다. 성도로서는 범사에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의 고백을 드리는 것이 당연하고, 또한 필요한 경우에 기도로써 담대히 아뢰는 것 역시도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같은 지체들을 만나 담소의 기회를 갖게 될 때에, 그러한 신앙적인 생활에 대한 주제들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때에 자칫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께 대한 평소의 경외심을 상실한 채, 마치 동네 사람 대하는 듯한 태도로 하나님을 대화의 주제로 삼게 되기 십상인 것입니다.

쉬운 예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한다거나 하나님의 역사가 대화거리가 될 경우, 어떠한 식으로든 일상적인 이야기들 중의 하나처럼 다루어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정작 실제적인 상황은 그렇지 않은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성도는 모름지기 일상적인 대화 중일지라도 일단 하나님이 대상이 된다거나 주제가 될 경우, 반드시 마음으로 하나님의 존귀하심을 느껴야 하고,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의 위엄을 훼손하지 않아야 하고, 반대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진솔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엄위를 드높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세와 대화 분위기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이름이나 하나님의 역사를 거론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과 존귀한 신비들을 자신의 신앙적 실력을 과시하려는 야심이나 탐욕거리로 삼는다거나 심할 경우 상대방과의 다툼의 소재로 사용하는 등등으로 경솔, 패악, 남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잘못은 주로 합법적인 성경공부 시간에도 빈번히 발생하기 쉽습니다. 즉 성경 말씀을 놓고 서로 간에 갑론을박하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은 사라져버리고 순전히 논증이나 논박의 자료와 근거 차원에서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역사를 들먹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누구보다도 더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이 실시하는 성경 교육에서 일정한 성과를 내는데 집중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열정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사실 그 자체에 스스로 함몰되는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버젓이 하나님이나 하나님과 관련된 내용들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냉랭하게 식은 채로 단지 자신의 가르침을 위한 지적 활용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경우가 너무도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입니다.

셋째, 우리는 가련한 인간들이 쉽게 또는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비난하는 것을 물리치고, 반대로 하나님의 지혜와 의와 인애를 찬양해야 합니다. 성도로서 살아가다 보면, 의도적으로 작심을 하고 열심을 내어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예기치 못한 도전에 직면하여 신앙을 변증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평소에 잘 훈련되었거나 신앙이 투철한 성도라면 세상 사람들이 온갖 트집거리를 동원하여 기독교 신앙을 비판할지라도 적절히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불신앙을 물리치는 데에는 성경에 근거한 논증 못지 않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경외심을 상대방이 느낄 수밖에 없을 만큼 자신에게서 실제적인 경건성이 발휘되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입심 좋게 “주여, 아버지 하나님!” 하는 식의 판에 박힌 습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억지춘향 식일 경우 상대방으로부터 오히려 반감만 더 자초할지 모릅니다. 억지로 꾸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경외심을 상대방인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그런 모습이어야 합니다. 실로 입술을 열어 유창하게 떠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이 전달되는 그런 진지함과 진실성과 안타까움이 풍겨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어떠한 경우의 대화, 강의, 토론, 연구 등등이라 할지라도 일단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게 될 경우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아무런 경외심이나 존중심도 없이 마구 떠벌려 다루는 것은 하나님께 불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심할 경우 죄로까지 규정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각별히 유념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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