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1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53문답

[질문] 제3계명이 무엇입니까?  [대답]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헛)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헛(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하신 것입니다(출 20:7; 신 5:11).
제53문답은 십계명의 세 번째 항목을 다룹니다. 이 셋째 계명의 핵심은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이름의 위엄이 우리에게서 거룩히 받들어지기를 원하신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무시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성도라면 모름지기 이유를 불문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오용하거나 남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반대로 범사에 하나님의 이름을 공경하며 경건하게 경외하도록 열성과 주의를 다해야 합니다.
실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신비들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말할 때에 항상 경외심을 품어야 하고, 그에 따라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신앙적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칼빈은 특별히 세 가지 점을 준수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제56문답 참조). 첫째, 하나님께 대한 마음의 생각과 입술의 표현은 항상 하나님의 탁월하심을 나타내야 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의 위엄에 부합해야 하고, 하나님의 엄위를 찬양하는 데 이바지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과 존귀한 신비들을 야심이나 탐욕 또는 대화 중의 재미를 위하여 사용하는 등등의 경솔하고, 패악하고, 남용해서는 안 됩니다. 셋째, 인간들이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비난하는 그런 데 빠져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면서 반대로 범사에 하나님의 주권과 지혜와 정의와 인애를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히 여길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망령되이 일컫는다”고 한 바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 신학자들마다 적절한 해석을 내어놓고 있는데, 이들의 여러 가지 가능성 있는 해석들을 종합해본다면 한 마디로 말해서 “헛되이 일컫는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의미 없이 부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당사자의 이름을 의미 없이 부르는 것은 이 세상의 관습상으로도 본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일임이 명백할진대 하물며 하나님일까 보겠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또는 헛되이 부르는 죄는 뜻밖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내건 모임에서 자행되기 쉽습니다. 그야말로 역설의 상황입니다. 가령, 찬송을 부를 때 하나님의 이름이나 하나님의 신비를 가리키는 내용에 대해, 어떠한 경외심이나 감동도 없이 말 그대로 그냥 노래로 취급해 버리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또는 기도 시간에, 하나님의 이름을 습관적으로 부르는가 하면, 무엇인가 필요하다면서 구하는 바로 그 시간조차도 사실은 아무런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대한 애절한 마음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다만 자기 자신의 종교적 감정만 고양된 것입니다. 또는 교회에서 회의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 회의를 내내 주관해주십사 하는 기도로써 시작했으면서도, 그러한 간구에 걸맞지 않은 태도로 일관하고, 그 결과 전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뜻에 명백히 배치되는 안건을 의결하는 경우는 더더욱 심하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경우가 적지 않지만, 그런 정도로 하나님의 이름을 일종의 장식(?)처럼 사용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태도, 즉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데 대해 명백히 ‘죄’로 정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볼 때 사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이 셋째 계명과 관련하여 참으로 많은 죄를 짓는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 문제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이 문제 앞에서 주의에 주의를 기울이고 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가령, 세월호 사건이 났을 때, 불신자들은 “옳다, 잘 걸렸다!” 하는 심보로 대놓고 하나님을 비난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 하는 식이었는데, 물론 이는 순전히 그네들 식의 잘못된 신관에 의한 것이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그들 역시도 잘못된 신관을 가진 것이겠습니다. 여기서 ‘잘못된 신관’의 의미는, 근본적으로 구원론 자체부터가 잘못되기 때문에, 즉, 십계명이 선포될 때에 제시된 전제, 곧 머리말에서 선언된 ‘구속사’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없거나 왜곡되었으므로, 셋째 계명을 거스르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성도의 입장에서 하나님이 이름을 부르거나 사용하는 것은 참으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어떤 성도의 가정은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하는 달력이나 액자 같은 것을 버젓이 걸어 놓는데, 정확히 말해서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장식품으로 이용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실제로 망령되게, 즉 헛되게 사용하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조용히 자신의 마음을 들여도 보십시다. 과연 나는 매사에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가? 그렇다는 데 대한 증거가 있는가?
Posted in 오늘의 신앙고백묵상.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