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4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52문답

[질문] 제2계명을 지킬 이유로 이어서 말씀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제2계명을 지킬 이유로 이어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권자이시고(시 95:2-3, 6-7; 96:9-10) 우리의 소유주이시며(출 19:5; 시 45:11; 100:3; 사 54:5), 친히 정하신 대로 경배받기를 열망하신다는 것입니다(출 34:14; 고전 10:22).

제2계명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신앙의 건강성 유지에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일부 성도들 중에서는 십계명을 단순히 말 그대로 ‘계명’ 그 자체로만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로 말미암아 무거운 짐 또는 억지로 마지 못해서 지는 짐과도 같이 되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십계명이 각 요소들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는데, 여기 제2계명을 지켜야 하는 이유와 같은 내용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가장 기본적인 교통 법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듯이, 우리네 신앙생활도 십계명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기본적으로 요구됩니다.

제2명은 혹자가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신개념을 갖는 것과 그로 말미암아 그렇게 잘못된 신앙의 모습을 외부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를 금하신 것입니다. 사람이란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신앙적 행동이 결정될 수밖에 없는 존재로되, 대체적으로 하나님의 모습에 대해 자기 방식으로 하나의 상을 그려내 보려는 그 자체부터가 잘못되었다는 데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이라고 해서 별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종교의 씨앗이 있어서 부득불 신앙심을 발휘하며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행 17:24-31), 그러한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드러내 보여주신 바에 대한 지식(계시)이 부족하거나 정확하지 못하면, 자기의 심정에 좋고 편한 대로 신앙 형태를 생각하고 그에 따른 행동을 하기 마련이므로,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우상숭배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일종의 형상을 만드는 행위이고, 그것을 하나님인양 생각하게 되는데 따라, 가장 순결하시고 본질상으로도 영이신 하나님을 그야말로 썩어질 금수나 심지어는 버러지 같은 형상까지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릇된 신앙심과 그릇된 신지식이 외적인 형태를 취하려 할 때에 이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제2계명을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주권자이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권위와 위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를 부려먹거나 우리로부터 노동력을 짜내는 그런 냉혹한 주권자이신 것이 아니라, 가장 참되고 가장 복되고 가장 합당한 것으로서, 당신의 백성을 양육하시는 그런 차원에서의 주권자이십니다. 이 사실은 십계명이 선포될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속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천명하신 때부터 전제되었습니다. 실로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형상과 모양으로 만드신 자비로우신 창조주로서의 주권자이십니다.

다음으로, 앞의 이야기가 다시금 강조되는 형식인데, 곧 하나님을 ’우리의 소유자’이시라고 하신 점입니다. 이 사실은 상당히 중요한데, 본디 우리 자신에 대한 소유권은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소유권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확장된 의미로 확정되었습니다. 즉 일상적 주종 관계로서의 소유가 아니라, 구원론적인 연합으로서의 일치를 위한 소유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1555년 8월 8일자로 칼빈이 피터 마터에게 한 다음과 같은 편지의 내용이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도록 자라갑니다. 그분은 자신의 영을 우리와 공유하시고, 이로써 성령의 감춰진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것이 되십니다. 신자는 그들이 부름 받는 시점부터 이러한 그리스도와의 교통을 갖게 됩니다. 이 교통 속에서 날마다 자라게 되는데, 이러한 성장은 그들 안에서 커가는 그리스도의 생명에 비례합니다.” 성도란 모름지기 이러한 차원에서의 하나님의 소유이자 예수 그리스도와 일체가 되었고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된 자이므로, 내적인 경외심 외에 외부적으로 어떠한 형상도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끝으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경배 받는 방식에 대해 ‘자신이 친히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부모에게 효도할 때에도 자기의 방식대로가 아니라 부모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올바르듯이, 그런 차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개다가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가장 좋은 예배의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로서는 가르침 받은 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필요하고, 나아가 이것은 거룩한 의무이기까지 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자신의 방식을 앞세우는 것은, 독선이자 이기주의일 뿐이지, 결코 사랑과 섬김이 될 수 없습니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시고, 하나님께서 규정하시고, 하나님께서 한정하신 바대로 드리는 것”일 때 성립된다고 한 개혁교회의 예배 원리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중에 단연 첫 번째는 하나님은 형상이나 형체가 없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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