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3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49문답

[질문] 제2계명이 무엇입니까? [대답] 제2계명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신 것입니다(출 20:4-6; 신 5:8-10).

십계명의 제2계명은 정확하게 제1계명을 좀 더 구체적으로 심화시킨 것이라는 특징을 갖습니다.  앞서 제1계명에서 선포된 바대로 보이지 않는 분이신 하나님께 대해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경배를 구체화시킬 수 있겠는가 할 때에 끼어들 수 있는 위험에 대한 강력한 경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본체는 영이시므로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수 없는 분을 경배하려 할 때에, 무언가 보이는 형태를 만들고자 하는 욕구에 사로잡히는 것은 인지상정일지 몰라도, 그렇게 할 경우 당연히 뒤따를 수밖에 없는 숱한 형상숭배와 그로 말미암아 우상숭배로 추락하게 되는 도사린 함정을 파는 격이라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이에 따라 제2계명이 선포되되 경고와 약속이 첨부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고와 약속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과 언약 관계를 맺으셨다는 토대 위에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실하고 신실한 남편의 의무를 다하시면서 대신 우리로부터는 사랑과 정조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엡 5:29-32). 그러므로 선지자는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장가드신 분으로 묘사했습니다(호 2:19-20). 이러한 정신은 유대인들의 배교를 책망하실 때, 그들이 정조를 저버리고 간음으로 더러워졌다고 한탄한 데서도 잘 나타납니다(렘 3장; 호 2:4 이하; 사 62:4-5). 실로 우리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저버리고 다른 신을 섬긴다면, 이는 실상은 혼인 맹세를 어긴 것이요, 음부를 끌어들여 혼인 침상을 더럽히는 것과 다르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다음의 세 가지를 주목하십시다.

첫 번째로, 경고의 목적은 전적으로 우리의 태만을 버리게 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자신을 멸시하거나 훼방하는 자를 반드시 벌하실 수 있는 ‘권능자’이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야말로 전지전능한 분으로 만군의 여호와이시므로, 자신의 영광을 훼손하는 어떠한 원수들도 능히 심판하십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자신의 영광을 드높이는 자들에 대해서는 한없는 축복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자신 외에 어떠한 동참자도 용인하실 수 없는 ‘질투자’이십니다. 물론 하나님의 이 질투는 당신의 백성을 향해서는 ‘열심’으로 승화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속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완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을 지키시는 ‘수호자’이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시작하신 구속사를 반드시 완성하시는 권능자가 되심을 수반함으로 우리에게 베풀어진 구원의 완성에 대한 보장으로 작용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복수 선언과 관련해서 먼저 전제해야 할 것은, 원칙적으로 의로운 아들이 악한 아비 때문에 벌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정의와는 부합하지 않고, 실제로 이 부분의 위협도 결코 이런 뜻이 아니라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옛적에 유대인들은 자기들은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아비의 죄’ 때문에 부당히 벌을 받는다면서 불평하면서,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하는 속담을 만들어 냈습니다(겔 18:2).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비의 죄 때문에 처벌이 아들에게 넘어가는 일은 없다고 단호히 선언하셨습니다(겔 18:20).

지금 하나님께서는 조상의 신앙과 불신앙이 후손들에게 끼치기 마련인 신앙적 영향력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즉 후손이 복을 받는 것은 거룩한 조상으로부터 거룩한 훈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은혜를 거룩하고 경건한 자의 가문에서는 떠나지 않게 하시겠다고 하신 약속의 언약입니다.  일반적으로 아비의 행실은 자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라는 것은 우리가 일상 경험하는 바대로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손이 그들의 조상의 악한 발자취를 따라간다면, 실상 그들은 조상의 악한 행실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이때 그들은 부모의 죄를 답습했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의 죄악 때문에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네 일상에서 경건한 자의 후손이 타락하는 경우가 있고, 악인의 후손이 개선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지금 하나님께서는 제2계명에 첨부하신 경고와 약속을 영구한 규정으로 확정하시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됩니다. 말 그대로 일종의 당근과 채찍 요법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신실한 자에게는 위로를 주어 선을 장려하고, 불충한 자에게는 위협과 공포로써 악을 경계시키려는 목적을 갖습니다. 이때 벌은 사 대로만 국한하시고 자비는 천 대까지 미치게 하시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의 자비는 참으로 크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분이시므로 어떠한 이유와 경우를 무론하고 우리의 감각적 지각에 예속시켜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시각적으로 표시하려는 어떠한 형상들일지라도 금해야 합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간에, 하나님을 보이는 형상으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과 반대되며, 반드시 우상이 되기 마련이어서 참된 예배와 경건을 부패시키고 타락시킵니다. 오직 말씀 선포를 성신께서 쓰셔서 우리의 뇌리에 각성을 일으키고 마음에 정서가 샘솟으며 그에 따라 실생활에서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증가되는 방식의 하나님 경외가 되어야겠습니다. 올바른 예배의 정신과 실상을 자손들에게 잘 물려주는 가정은 실로 그 자체로서도 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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