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5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42문답

[질문] 십계명의 강령이 무엇입니까? [대답] 십계명의 강령은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웃을 자기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신 6:5; 레 19:18; 마 22:37-40; 요 13:34; 롬 13:10).
  • 소신앙고백 제42문답은 하나님께서 ‘도덕의 법칙’으로서 내신 십계명의 핵심 사상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 ‘강령’이라고 한 데 대한 사전적 정의는 “그 정당에서는 새로운 강령을 채택했다”라고 한 데서 보듯이 “일의 근본이 되는 큰 줄거리”입니다. 십계명은 구약의 모든 율법에 대한 강령이지만, 십계명 자체를 더 좁혀 들어가보면 두 가지 강령으로 압축되는데, 즉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것을 또 좁혀보면 ’사랑’입니다. 신앙고백문답에서 제시한 십계명에 대한 강령은 한 율법사가 주님을 시험하여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했을 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라고 하신 바에 따른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같은 단어인 ‘아가페’를 사용하셨습니다.
  • 비록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사랑 이렇게 두 가지를 말씀하셨지만, 실상은 동전의 양면이 나누어질 수 없듯이 사랑이란 그렇게 두 대상을 상대로 발휘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셨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랑은 인격 대 인격 간의 관계를 전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이 사랑을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적용할 경우 의미가 상당히 특별해진다는 점에 대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랑이라는 개념이 담고 있는 정신에 있어서는 같은 것이지만, 그것이 표현되는 방식에 있어서는 명백히 차원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반드시 달라져야만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에게 하는 듯한 사랑의 정신과 방식을 하나님께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하는 말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사랑을 적용하실 때 사람에게는 ‘네 몸과 같이’라고 하셨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라고 하신 데서 명확합니다.
  • 이 둘 간의 차이는 우리네의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서도 정확하게 인지될 수 있습니다. 가령, 연인 간의 사랑이나 친구 간에 우정이라는 말로써 표현되는 사랑은,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님께 대한 공경이나 효도로써 표현되는 사랑과는 여하튼 차이가 있는 그런 경우와 같은 것입니다. 요즈음은 이 둘 간의 차이가 희석되어 있고, 사람 간의 사랑과 우정에 대한 경험과 실재에 따라, 하나님께 대한 사랑도 그런 정도로서 생각하는 부족함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하나님과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적용하셨지만, 이는 율법사의 돌발적인 질문 때문에, 우선적으로 핵심 사항을 들려주신 데 따른 것이지, 사실은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그랬을 경우,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성격은 사람 간의 사랑의 성격 간에 있는 확실한 차이였을 것입니다.
  • 사람 간의 사랑에도 명백히 차이가 있습니다. 연인 간의 사랑과 친구 간의 사랑이 붕어빵처럼 똑 같을 수 없습니다. 외적인 형식에서는 더더욱 그렇지만 내적인 정신이나 마음의 동기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럴지라도 사랑이라는 단어로써 표현될 수 있는 정신이나 동기는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하고 그것은 동시에 순수성을 수반한 것이어야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 대해서일까 보겠습니까? 이 차이는 부모에 대한 사랑은 공경의 의미가 더 정확하듯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반드시 경외와 경배의 의미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라고 하신 바에 부합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가장 대표적인 표현 방식은 단연 예배 의식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일상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대한 경배와 경외로 일관되어야 하지만, 그렇게만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요, 자신의 일상의 실패를 두둔하는 회피에 불과하게 됩니다. 성도가 자신의 생명을 전체적으로 하나님께 바치고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대변할 수 있겠습니까? 단연 특정한 시간 대에 일정한 격식을 갖추어 올리는 예배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 의식을 외면하면서도 “나는 틀림없이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다!”라고 강변하면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양심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 성도는 평소에도 하나님께 자신을 산 제사로 드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주일과 같은 특정한 날에 함께 구원 받은 다른 성도들과 한 몸을 이루어 하나님의 존전에 부복하여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입니다. 예배 시간 내내 전심으로, 그야말로 온 마음과 몸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경배를 표현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의미입니다. 인간 세계에서의 사랑도 단순한 사상이나 감정이라기보다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열매를 맺는 것이어야 할진대 하물며 하나님께 대해서일까 보겠습니까? 예배가 온전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행위도 그러한 것이고, 그렇다면 사람을 상대로 한 사랑도 온갖 이기심과 세속주의로 일관될 수밖에 없습니다.
Posted in 오늘의 신앙고백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