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28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41문답

[질문] 도덕의 법칙은 어디서 총괄되어 나타났습니까? [대답] 도덕의 법칙은 십계명에 총괄되어 나타났습니다(신 4:13; 10:4; 마 19:17-19).

지난 번 문답의 핵심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마땅히 순종할 규칙으로 처음 나타내 보이신 것은 도덕의 법칙이다”라는 데 대한 것이었습니다(제40문답). 이곳의 주제는 하나님께서는 이 도덕의 법칙을 어디에 총괄적으로 나타내셨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주지의 사실이듯이 ‘십계명’입니다.  하지만 십계명이 주어지기 이전부터 이미 도덕법이 베풀어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도덕법이 제일 처음 나타난 것은 창세기 2:16-17로서, 곧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도록 금하신 내용입니다.

십계명으로 성문화된 도덕법은 양심법을 보다 선명하게 구체화시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타락할 때에 양심법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양심은 인간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심겨 있지만, 부패하고 더럽혀져 있으므로, 기능의 온전한 발휘에는 한계에 부딪혀 있고, 오작동으로 일관하고,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주심으로써 원리와 기준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도덕법이 십계명 속에 요약되어 담겨 있는 것은 ‘지고의 선’인 ‘율법의 총체’요 ‘주요한 골자’가 거기(십계명)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 도덕의 법칙을 주시되, 율법이라고 하는 성문법(실정법)의 그릇에 담아 주신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용을 명확히 하는 의미와 더불어 하나님과의 관계 유지의 수단이 되게 하신 때문입니다. 시대는 흘러갈수록 계속 타락의 문화를 광범위하게 확신시켜 나가면서 온갖 세속 이론으로써 죄가 죄인 줄 모르도록 희석시키는가 하면, 상식과 보편성을 앞세워 죄를 죄가 아닌 것으로 합리화시켜 나갑니다. 이러한 특성을 감안한다면,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정의를 인간의 양심적 판단에 맡겨두지 않으시고, 만고불변의 법칙이 되게 하심으로 만대에 변함이 없게 하신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도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라고 하신 바대로입니다.  율법은 세상 끝날까지 살아 있으면서 지고의 권위로서 궁극적인 선과 악을 규정 짓습니다.

그런데 도덕법에 대해 십계명에 총괄되어 있다고 했기 때문에, 흔히 십계명을 하나님께 대한 계명과 사람에 대한 계명 이 둘로 구분할 때에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구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마치 하나님께 대한 계명은 도덕법과는 상관없이 신앙과만 관계되는 독립적인 것인 양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엄격히 말하자면, 지고의 도덕법은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경배로 귀결되는 데서 진정한 가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여타 종교들이나 소위 수양 단체들로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독특성이자 유일성입니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성도로서는 지극히 도덕적이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도덕의 법칙이 십계명에 총괄되어 나타났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언약 사상’에 있습니다.  이는 십계명 자체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맺으신 언약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십계명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시는데, 이때 능히 순종할 수 있게끔 먼저 구속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언약적 순종이 요구되기 전에, 먼저 그들을 억압하고 있는 바로의 권세로부터 구속해 주신 데서 잘 나타났습니다. 이것의 궁극적인 성취는 바울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14)라고 한 데서 잘 나타났습니다.  그 결과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 6:12-14)라고 한 삶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세 번째로, 도덕법의 범위는 특정한 법조문들로써는 다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그러므로 해석하고 적용할 때에도 항상 문자적 의미 이상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칼빈이 제기한 원리는 아주 유용합니다. 가령, 어떤 무엇인가가 금지될 경우, 이는 동시에 이것과 상반된 의무가 명령되는 것이며, 동시에 이와 비슷한 모든 종류의 죄도 금지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외적인 행위뿐만 아니라, 모든 모든 죄를 향한 내적인 애정까지도 금지되는 것입니다.  또한 안식일 준수 명령과 부모 공경 명령의 경우처럼, 무슨 의무이든지 명령되게 되면 그와 상반된 것은 더불어 금지되는 것이고, 역시 비슷한 모든 종류의 의무들, 즉 거기로 향하는 모든 합당한 애정들과 함께, 거기에 이르는 데 도움을 주고 촉진시키고 조장시키는 수단들의 사용,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순종하도록 도움을 주고 고무시켜 주기 위한 우리의 모든 노력과 의무들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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