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07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8문답

[질문] 신자가 부활할 때에 그리스도에게서 무슨 유익을 받습니까? [대답] 신자가 부활할 때에 영광 중에 일으킴을 받고(고전 15:42-43), 심판 날에 공적으로 인정되고 죄없다 함을 얻으며(마 10:32; 25:33-34, 46; 딤후 4:8), 영원토록(시 16:11; 살전 4:17) 하나님을 충만하게 즐거워하면서 완전한 복을 누릴 것입니다(마 25:23; 롬 8:29; 고전 13:12; 요일 3:2).
  • 소신앙고백 제38문답은 한 마디로 말해서 기독교 신앙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은 자가 부활된다는 데 대한 경이로운 선포이기 때문입니다. 실로 우리의 신앙은 죽어 흙 속에 묻힘에 따라 완전히 썩어버린 몸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때가 되면 부활하게 된다는 것입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우리의 신앙을 조롱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자기네도 부활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단, 우리의 부활과 그네들의 부활 간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몸의 부활을 확실하게 믿습니다(고전 15:13-14, 19). 우리로 하여금 육체의 부활을 믿을 수 있도록 성경이 주는 도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유사성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입니다.
  • 첫째, 부활이라는 주제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의 구원자의 경우를 생각해야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의 영생을 얻으셨고, 이것을 거울 삼아 우리로 하여금 장차 올 부활을 보증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부활하신 사실에 어떠한 의심도 개입하지 못하도록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당시 원수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막으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리는 하늘 천사의 선포를 울리셨습니다(마 28:6; 눅 24:6). 그리고 이후로도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이곳 저곳에 나타나셔서 자신의 부활을 증거하셨고(눅 24:38, 40; 요 20:27; 행 1:3, 9; 고전 15:6; 행 9:4, 7:55), 그런 다음 이미 충분히 가르치셨던 바대로 다시 오시기 위하여 하늘로 승천하셨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되신 사건은, 장차 이 사실을 굳게 믿는 우리에게 이루어질 영광스러운 부활을 보증하며 앙망케 합니다.
  • 둘째,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우리의 육체 부활하리라는 데 대한 훌륭한 근거가 됩니다. 바울은 이 점을 확신 있게 가르쳤습니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 3:21).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사실 자연계에서까지도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고전 15:36). 성경 도처에서 제시된 숱한 기적들을 보십시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말미암은 기적들입니다. 이렇게 부활을 확신하는 우리 앞에 그에 대한 보증으로 제시된 것은 우리의 지각을 압도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들인 것입니다.
  • 이상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총체로 여기는 성도들이라면, 장차 부활의 승리가 죽음을 삼켜버릴 것이라고 한 성경의 예언의 성취가 이루어지는 그 벅착 날의 행복을 소망해야 합니다. 성도의 신앙은 궁극적으로 부활이 목표여야 합니다. 비록 우리 자체의 한계 때문에, 물질적인 언어로 대강 묘사된 그날의 영광을 우리로서는 충분히 깨닫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지만 최고의 선과 행복의 모든 요소는 하나님 자신께 있으시다는 진리에 닻을 내려야 합니다.
  • 한편, 부활 문제와 관련하여 아무리 해봐도 유익이 없는 무가치한 질문이나, 위험한 사변에 빠지게 만드는 유해한 질문들 앞에서는 다소곧이 절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다룰 때, 무익한 문제들을 공연히 연구하지 않는 것이 좋고, 또한 그런 문제에 대답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경박한 행동을 조장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 좋습니다. 실제로 어떻게 하면 하늘로 갈 것인가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천만 명 중에서 조금도 되지 않으나, 하늘에서 어떤 일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알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태만한 까닭에 미래의 세계를 상상하는 데는 열심이지만, 정작 그것을 얻기 위해서 이 세상과 싸워야 한다는 요구 앞에서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면서 도망가기 바쁜 모습이 실상입니다.
  • 그날에 성도들 각자가 들어가게 될 영광의 정도는 동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차이(?)가 이 지상에서처럼 상대방을 향한 멸시거리나 또는 그로 인한 열등감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의 생명 세계야말로 이 지상에서의 교회 공동체가 추구하는 ‘섬김의 삶’과 ‘공유하는 삶’의 완벽한 실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 정리하겠습니다. 실로 의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을 통하여 죽음을 정복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어주셨습니다(말 4:2; 딤후 1:10). 우리는 이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제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권속으로서 하늘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 소망을 굳게 잡아야겠습니다. 참으로 우리의 구원의 궁극을 ’육체의 부활’로서 이해했다면, 우리로서는 한시도 중단없이 마음을 높이 하늘로 끌어올려야 할 것입니다. 어떠한 태산 같은 불행이 우리를 압도하고, 세속 인간들이 우리를 조롱하며, 상하 전후에 무서운 유혹이 우리를 둘러싼다 할지라도 끝까지 그렇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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