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3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9문답

[질문]: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값 주고 사신 구속에 참여하는 사람이 됩니까? [대답]: 그리스도의 성신께서 그 구속을 우리에게 효력 있게 적용하여 주심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값 주고 사신 구속에 참여하는 사람이 됩니다(슥 4:6; 요 3:5-6; 고전 12:13; 딛 3:4-7).

소신앙고백문답 제29문답은 지금까지 살펴본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적 직책으로 말미암은 구원 사역에 어떻게 우리가 참여하게 되는가에 대해서 다룹니다. 표현상으로는 ‘우리가 참여한다’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이 마저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성신으로써 우리에게 구속이 효력 있게 적용되게끔 그렇게 해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자신이 그리스도를 붙들고 있는 것이긴 해도, 실상은 그리스도께서 먼저 자신을 붙들고 계시는 까닭에 그처럼 그리스도를 붙들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보아야 할 중요한 관점은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베푸시고 이끌어 주시고 완성시킨신다는 점에 대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간과하거나 강조하지 않는 것은 결국 구원의 주도권을 사람에게 돌릴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므로 개혁주의 신앙이 아닐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개혁기 및 이후로도 구원의 모든 것을 사람 자신의 의지에 종속시킴으로써 교회 안에 많은 혼란을 일으킨 가르침이 꾸준히 있어왔습니다. 물론 맹백히 잘못된 이러한 교훈의 뿌리는 어거스틴 시대 때 그와 평생 논쟁하였던 펠라기우스에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알미니안주의’라고 부르는데, 이는 1609년에 죽은 야콥 알미니우스가 이러한 주장을 하여 교회 안에 큰 혼란을 일으켰고, 그 여파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탄식할 정도로 우주 전체에 편만한 저주는(롬 8:20-22) 아담의 죄에서 흘러 퍼진 것이며, 그것이 그의 모든 후손에게 연장되었어도 불합리한 것은 없습니다. 이것은 물려받은 부패인데, 교부들에 의하여 원죄(Original Sin)라고 불렸습니다(롬 5:12). 지난 번 제16문답에서도 보았듯이, 하지만 펠라기우스파(the Pelagians, 354-420)와 그의 추종자 셀레스티안파(the Celestians)는 인간의 부패성을 ‘아담으로부터의 번식에서가 아니라 ‘아담에 대한 모방’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반박하여 어거스틴은 우리가 모태로부터 타고난 결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던 것입니다.

종교개혁 당시에도 이러한 오류는 당시 로마 카톨릭 교리에서 아주 분명히 보여졌습니다. 그들의 교리에 의하면, 인간이 하나님의 협력 없이는 자신을 구할 수 없듯이, 하나님은 인간의 협력 없이는 사람을 구별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이 절충안의 결과는 결국 신앙에다 행위를 더하고, 그리스도에다 마리아를 더하는 등등의 ‘더하기 신앙’이란 것을 형성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개혁된 후로도 다시금 알미니우스에 의해서 되풀이 되었던 것입니다.

소신앙고백문답에서 “그리스도의 성신께서 그의 구속을 우리에게 효력 있게 적용하여 주신다”라고 한 바는 참으로 중요한 진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구속의 주체는 사람 편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속한 것입니다. 사람은 전파되는 복음을 듣게 될 때에 ‘복음을 영접하여 그리스도께 가야겠다’ 하는 생각은 혹 할 수 있겠지만, 그는 죄와 허물로 부패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막상 신앙을 가지려고는 하지 않으며, 실제로 가질 수도 없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직 성령께서만이 자신의 주권에 따라 죄인의 마음을 중생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중생되었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보증하는 절차가 바로 교회에서의 세례식입니다. 하지만, 종교개혁기에 소씨니안파(Socinians)와 재세례파(Anabaptists) 등은 세례가 하나님의 은혜의 인호라는 것을 부정하고, 인간 편에서 단순히 신앙을 고백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먼저 자신의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에 연합시켜 주신 사실이 없이는 누구도 신앙을 고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사실은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해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 하신 저 유명한 말씀에서부터 확실한 것입니다. 즉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편에서가 아니라, 먼저 성령께서 성도를 중생시키셨다는 사실이 확인될 때, 교회는 공적인 권위로 그에게 물세례를 베풀어 예수 그리스도의 한 지제로 영접해 들이는 절차를 취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록 표현상으로는 “세례를 받고 구원 받았다”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구원 받은 사실이 있기 때문에 세레 시행을 통하여 교회가 공적으로 공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정신이 얼마나 하나님과 하늘의 비밀들에 대해 눈이 멀었는지, 또한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큰 불신앙으로 구원에 저항하는 모든 일에 진력하는지 충분히 숙고해본다면, 지금 우리에게 있는 ‘믿음’이란 것이 그야말로 우리의 모든 본성적 능력을 훨씬 능가한다는 것과 그것이 하나님의 뛰어나고 독특한 선물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내가 ...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 3:12)라고, 즉 ’잡힌 바 되었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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