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7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1문답

[질문] 효력 있는 부르심이 무엇입니까? [대답] 효력 있는 부르심은 하나님의 성신께서 하시는 일로서(엡 1:17-18; 살후 2:13-14; 딤후 1:9), 우리의 죄와 비참함을 깨닫게 하시고(행 2:37), 우리의 마음을 밝게 하여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행 26:18; 고전 2:10, 12; 고후 4:6),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셔서(신 30:6; 겔 36:26-27; 요 3:5; 딛 3:5), 우리로 하여금 복음 가운데 값없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사 45:22; 마 11:28-30; 계 22:17) 우리를 설복하여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요 6:44-45; 행 16:14).

제30문답은 그리스도께서 값주고 사신 구속을 성신께서 우리에 적용하시는 방식에 대한 개괄적인 해석이었는 ‘효력 있는 부르심’이라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속이 성도 개인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성신께서 효력 있는 부르심으로 역사하사 성도의 생명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합시켜 주셔야만 합니다. 이 연합 사상이야 말로 그리스도의 구속이 성도에게 적용되고 모든 구속의 효력을 누리게 해주는 핵심 키워드인 것입니다.

이제 제31문답에서는 성신의 주권 역사인 이 효력 있는 부르심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일반적으로 접하게 되는 핵심적인 논증을 다 포함하는 방식으로 효력 있는 부르심의 성격을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기조는 성도로 하여금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속을 깨닫고 의지하게 함에 있어서의 성신의 주권과 능력입니다. 한 가지 흥미 있는 사실은 조직신학의 영역에서는 효력 있는 부르심을 소명이라는 용어로써 표현하지만, 소신앙고백문답은 지금처럼 효력 있는 부르심을 선호하여 아예 소명이라는 용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것은 두 영역 간에 무슨 큰 차이가 있는 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여하튼 이 주제와 관련하여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진리는, 성신의 효력 있는 부르심이 적용되는 사람에게는 그 이전에 먼저 ‘선택’된 사실을 전제한다는 원리에 대한 것입니다.

본 문답에서 중요하게 제시하는 성경 구절은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요 6:45)라고 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성신께서 효력 있는 부르심으로써 역사하심에 있어서 일종의 도구를 사용하신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곧 ‘듣고 배운 사람마다’라고 한 데서 보듯이 선포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칼빈은 성신의 효력 있는 부르심은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의 말씀 선포와 다르지 않다고 했습니다. 즉 성신께서 효력 있는 부르심으로 역사하심에 있어서 말씀 선포를 도구로 사용하시는 의미였습니다.  순서를 보자면,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선택하시고(제20문답), 역사 속에서 성신의 효력 있는 부르심을 통하여 성도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합시켜 주시는데(제21문답), 이때 성신께서는 말씀 선포하고 하는 외적인 수단을 사용하십니다(제31문답).

이쯤되면, 말씀 선포의 사실 못지 않게 말씀 선포가 구성하고 있는 내용에 관심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말씀 선포란 단순히 소리의 전달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선포는 내용적으로 기독론을 구성할 것이 자명한데, 첫째, “우리의 죄와 비참함을 깨닫게 되고”, 둘째, 우리의 마음이 밝아져서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셋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도록 의지의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성신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 성신께서 효력 있는 부르심을 베푸심에 있어서 말씀 선포를 사용하실 때, 오직 창세 전에 택함을 입은 사람들만이 이에 응답할 수 있는 법이라고 한 좀 전의 논증을 다시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소명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 하나님은 일반적인 소명으로는, 외면적인 복음 선포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자신에게로 부르십니다(마 24:1-9). 둘째, 성도에게만 주시는 소명으로는 그의 영으로써 성도들의 마음을 비추시어 선포하신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머물게 하십니다(마 22:11-13). 이런 차원이 있으므로, 예수님께서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고 한 말씀을 뒤이으신 것입니다. 물론 예수께서 베푸신 ‘왕의 천국 잔치 비유’는 (그것이 베풀어진 상황을 볼 때) 성도들에게 적용될 것이 아니고, 믿노라고 하면서 교회에 들어왔으나 그리스도의 성결을 입지 않은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창세 전에 선택된 사람으로서는 성신의 효력 있는 부르심이 그대로 역사되기 마련인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의지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성도가 자신의 죄의 비참함을 절감하면서 어찌하든지 예수 그리스도께로 피난하는 실상이 수반되기 마련입니다.  성도는 다른 무엇에 앞서 죄를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초지일관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이 두 관계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성도에게서는 죄가 감소되고 선행은 증가되는 변화가 뚜렷해지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럴지라도 신자들의 행위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더욱 뚜렷하게 인식하게 해주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자신들의 선택(their election)을 알게 해주는 부르심의 표징들(signs of calling)인 밖에 다름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면, 그 사람은 즉각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Posted in 오늘의 신앙고백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