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4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71문답

[질문] 제7계명이 명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제7계명이 명하는 것은 마음과 말과 행동에서(마 5:28; 엡 4:29; 골 4:6; 벧전 3:2) 자기 자신의 정조와 이웃의 성적 순결을 보존하라는 것입니다(고전 7:2-3, 5; 7:34, 36; 살전 4:3-5). 

지난 번에는 제7계명에 대해서 ‘하지 말라’고 하는 부정적인 차원에서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제7계명이 명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한 데서 보듯이, 보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다루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제시되는데, 즉 첫째, 자기 자신에 대해 취해야 할 태도, 둘째, 이웃에 대해 취해야 할 태도 등입니다.

첫째, 자기 자신의 정조를 보존해야 합니다. 정조라는 단어에 대한 사전적인 뜻은 ‘이성 관계에서의 순결’을 가리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면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기독교 신앙에서는 혼인 전의 남녀가 성관계를 갖는 것은 절대적으로 허용될 수 없습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혼인 전에 성관계를 갖는 것은 신앙적으로 불법이자, 명백한 죄입니다.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통해서 “간음하지 말라”라고 하신 말씀은 이미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맺는 행위만을 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로서는 하나님과 만인 앞에서 공식적으로 부부가 되기로 선언하지 않는 한, 성관계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이 문제는 사람의 눈치를 본다거나 시대적 상황에 기죽어서, 에둘러 표현된다거나 다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사람에게 있는 성욕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축복이자 본능이지만, 명백한 어떤 질서 하에서 다루어져야 하고, 그렇게 될 때라야 진정한 의미도 살아나게 되어 인간을 행복하게 해줍니다. 물론 이것은 비단 성관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실로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우리네 인간의 행복과 복락을 위해서였고, 그렇게 하실 때에 사람들 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땅히 지키는 것을 통하여 행복과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일련의 질서를 제정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주권은 절대적으로 존중되어야 하고, 그렇게 하는 데서 인간도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녀 간의 참된 하나됨이라고 하는 실천과 경험을 통하여, 물론 이것은 정신과 육체 양면에서 생각되어지는 것이로되, 성도들이 하나님 당신과의 하나됨의 경지를 갈망하는 데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물론 이것은 어떤 의미로든 간에 결코 물리적인 결합의 의미일 수는 없고, 구속사가 지향하는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완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범사에 하나님을 드높이고 경외하는 모습이 충만한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신랑으로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바와 같은 사랑을 신부에게 실천하고, 신부로서는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바와 같은 사랑을 신랑에게 실천하는 데서 경험되는 하나님 나라의 생명력, 바로 그러한 하나님 나라의 구현과 결부되어 있는 것이 바로 우리네 부부 간에 허용되어 있는 성관계라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그리스도인으로서 문란한 성관계에 빠지는 문제는 단순히 도덕적 차원에서만 다룰 수 있는 죄악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쳐 줍니다. 혼전 순결이 파괴되는 때에, 성도는 단순히 개인적으로 자신의 몸에 죄의 흔적을 새겼다는 차원을 넘어, 나아가 좀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오염시키고 훼손시키는 죄를 자행한 것입니다.  교회로서는 간음과 관련한 문제가 이토록 중차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성도들이 이 문제 앞에서 정도를 벗어나지 않도록 각별한 관심으로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오늘날 2030 세대의 성에 대한 생각은 말 그대로 거침이 없다고 볼 정도라는 데 있습니다. 혼전 순결에 대한 의식희박의 차원이 아니고, 아예 이미 부지기수로 성관계를 경험하였고, 심지어 그 대상까지도 그야말로 여려 명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실임에 대해서는 여러 설문조사를 통하여 드러난 공통점이고, 여러 언론매체를 통하여 거의 주기적으로 공표되고 있는 데서 여실합니다.

둘째, 육체적 순결 못지 않게, 마음과 말에서의 순결을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마음과 말에서 순결을 지키지 못하는 데서 육체적 방탕으로까지 발전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는 주님께서도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라고 하신 데서 매우 명확합니다.  성도로서는 농담으로라도 음담패설(淫談悖說)이나 육두문자(肉頭文字)를 입에 올려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라고 했고, 또한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 4:6)라고 하였습니다.  이 문제는 제72계명에서 계속되므로, 그곳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정리하자면, 성도는 마음에 품는 생각과 그러한 생각을 바깥으로 표현하는 말에서는 물론이고, 육체적으로도 순결해야 합니다. 이 문제를 중요하게 가르치고 있는 제71계명 앞에서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Posted in 오늘의 신앙고백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