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7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70문답

[질문] 제7계명이 무엇입니까? [대답] 제7계명은 "간음하지 말지니라" 하신 것입니다(출 20:14; 신 5:18). 

소신앙고백문답 제7계명의 주제는 ‘간음’에 관한 것입니다. 간음의 사전적 정의는 ‘부정한 성관계’인데 주로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의 성관계를 가리킵니다. 사통 및 간통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사법상으로 ‘간통죄’를 운영하여 이를 엄격히 다루었지만,  이를 폐지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간음 또는 간통은 고래로부터 동서양을 물론하고 인류상 특별히 부부 간의 신의를 배반하는 행동으로 여겨왔습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사이엔가 서양에서는 간통죄를 폐지하는 국가들이 많게 되었고, 그러한 경향에 따라 대한민국도 몇 차례 제기된 헌법 소원에 대한 기각을 반복한 끝에, 끝내는 이를 받아들여 폐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앞세운 극단적 자유주의 및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공리주의 사상에 지배된 때문일 것입니다.

오래 전에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정언명령(定言命令, Categorical Imperative)을 주장하면서, 사람의 양심에 자리잡고 있는 불변적 도덕법칙을 정언적(定言的)이자 단언적(斷言的)인 지상 명령으로 규정하였는데, 그가 보기에 혼인의 순결은 아무 조건 없이 그 자체로서 바람직하고 이성에 부합되는 것이므로, 인간 세계에서 엄중히 지켜져야 합니다. 만에 하나라도 자유의지를 앞세워 아무하고나 성관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보편 입법으로 제정될 경우, 그로 말미암아 초래될 사회적 혼란은 강 건너 불을 보듯이 뻔한 것이지 않겠습니까?

칼빈은 이 계명의 목적에 대해, 하나님은 정숙(chastity)과 순결(purity)을 사랑하는 분이시므로, 모든 불결(uncleanness)을 멀리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성도로서는 육체의 본능에 대한 육욕에 사로잡혀 정욕으로 더럽혀져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품위에 걸맞게 생활의 모든 부분을 금욕과 자제로써 절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특별히 음욕과 관련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칼빈이 보기에 음행은 모든 정욕의 귀착점이며, ‘신체에 낙인을 찍는 죄’라는 점에서 더욱 현저하게 추악합니다. 그는 확실히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8-20)라고 한 말씀을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고독하지 않도록 돕는 배필과 함께 즐겁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창 2:18). 따라서 결혼 제도를 제정해 주셨고, 남녀의 동거 생활을 축복하심으로 거룩히 구별해주셨습니다. 이것은 남녀 각자의 순결을 전제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결혼을 조건으로 하지 않는 남녀의 결합은 두 당사자에게 부끄러운 짓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이며, 그에 따른 하나님의 저주를 받습니다.

하지만 죄를 짓고 타락으로 떨어지게 되었을 때, 그 타락의 성향은 무엇보다도 이 본능을 극도로 이용하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숱한 음란죄가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보듯이 이 죄의 보편적 확장은 마침내 사람들의 뇌리에 일종의 상식이나 유행 차원으로 심각성을 경감시켜버렸습니다. 사람들의 성향이 보다 더 자유주의적이 됨에 따라, 국가들마다 그 동안 엄격한 사회 규범으로서 지켜 오던 간통죄를 앞다투어 경쟁하듯이 폐지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더 나쁜 것은, 아예 매춘까지도 버젓이 직업의 한 종류로 자리잡는 성향인데, 국가는 정당한 노동의 일환으로 여겨 세금을 부과하기까지 합니다.  

한국에서의 상황이 아직 이런 정도까지는 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사실상 뒷거래를 통해서는 거의 예외가 아닐 정도로 횡행하고 있다고 보아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노래방과 단란주점들 및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으로 치장한 모텔들이 버젓이 주택 밀접 지역에까지 늘어서 있습니다. 몇 번 이용하면 한 번은 무료 숙박권을 준다는 등의 상술까지 동원할 정도입니다. 국가는 이런 것들을 조정하거나 유도할 능력을 상실한지 이미 오래 전부터입니다. 퇴폐 마사지 업체들을 비롯한 다양한 변장술을 앞세운 온갖 유흥 업소들이 줄어들기는커녕 반대로 늘어만 가는 이러한 현실 앞에서 그리스도의 순결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잊지 맙시다. 죄를 규정 짓는 것은 사람의 자유와 판단이 아니라, 영원불변의 법칙으로 성문화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비록 자기들만의 특별한 사정이 있다 할지라도, 정식 혼인을 통한 가정 형성을 전제하지 않는 남녀 간의 결합은 명백히 죄악입니다. 맑고 청순함이 자랑이어야 할 갓 사춘기를 막 벗어난 듯한 청춘 남녀들이 버젓이 모텔을 드나들고, 그네들에게 원조 자리를 빼앗길세라 더더욱 불길처럼 번져가는 불륜이, 마치 시대의 상식처럼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이 시대의 풍습 앞에서, 사실상 소돔과 고모라가 따로 없다는 판단을 하지 않는다면, 과연 무엇에 대해 그럴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성도들로서는 이러한 때일수록 우직한 믿음으로 순결한 삶을 굳건히 살아갈 수 있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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