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0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69문답

[질문] 제6계명이 금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제6계명이 금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생명이나(행 16:28) 이웃의 생명을(창 9:6) 불의하게 빼앗거나 죽음으로 이끄는 모든 것입니다(잠 24:11-12; 마 5:22; 갈 5:14-15; 요일 3:15).

제6계명에 대한 정의(67문답), 긍정 명령(67문답)에 이어, 이제 제69문답에서는 부정 명령을 다루게 됩니다. 말 그대로 “살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두 차례에 걸쳐서 직접적인 살인 행위의 죄스러움에 대해서 충분히 살펴보았습니다.  살인죄란 얼마나 극악무도한 죄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생명에 대한 주권은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신의 생명이나’라고도 했음을 눈 여겨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살하는 것은 명백히 죄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로서는 여하 간에 타인의 목숨을 해쳐서는 안 되고,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저버려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 살인죄가 얼마나 만연해 있습니까?  타인에 의해 살해되는 경우이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의 경우이든 간에, 살인행위가 널러 만연해 있음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경우 자살률이 놀랍게도 세계 1위라고 합니다. 낙태와 같이 좀 더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아예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경우를 제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습니다. 그런데 이 자살률 급증의 변곡점은 경제 위기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합니다. 또한 살인률은 세계 6위라고 합니다. 살인의 동기에 대해서는 워낙 다양하므로 다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하튼 성도는 어떠한 경우에도 다른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물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도 마찬가지로 엄격히 금합니다. 가끔 목사의 살인 또는 목사의 자살 같은 자극적인 주제가 신문지상에 오르내리지만, 이는 매우 극단적인 실례이므로 보편적 주제로 다룰 수는 없겠지만, 살인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직접적인 살인 행위라는 것은 이미 살인하고자 하는 동기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성경이 왜 ‘마음의 살인’ 행위에 대해 그렇게도 예민한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법은 겉으로 드러난 행위에 대해서는 간여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품는 마음의 태도에 대해서부터 간여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 하에서 사도 요한은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5)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1-22)라고 하신 말씀을 반영한 것입니다.

여기서 미워하고 증오하는 대상에 대해 ‘형제’라고 한 바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로 보자면 한 교회에 속해 있는 지체를 지칭하는 것이겠습니다. 함께 같은 교회를 이루고 있는 형제와 자매는 더 이상 세상적인 차원과도 같이 ’남남’이 아니고, 그럴지라도 세상적인 차원에서와 같은 ’형제자매’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회자되는 표현으로 ‘물로보다 진한 것이 피이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한 집 안에서의 가족관계로 말미암는 친화력은 세상 사람들 간에 맺게 되는 친화력보다는 월등히 끈끈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성도는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함에 따라 공식적으로 교회원이 되게 되는데, 그에 따라 이미 교회원으로서 성립되어 있는 사람들과 연합되게 되고, 그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에 참여하게 되는 지체로서 자리매김을 하게 됩니다. 이때의 친화력은 ’물보다 피가 진하다!’ 하는 차원을 넘어 ’피보다 진한 것은 지체들 간의 연합이다’ 하고 말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마치 자기 몸의 어느 한 지체가 다른 지체를 결코 미워하는 관계가 성립될 수 없는 것처럼, 성도들 간에는 어느 누구도 다른 지체를 미워하거나 질시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고, 엄격히 말해서 일어날 수도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에 수직적으로 연합되어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라면, 함께 수평적으로 연합되어 있는 다른 성도를 마치 제 몸처럼 섬기는 것을 통하여 증명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원리를 염두에 둔다면, 한 교회 안에서 성도가 성도를 미워하고 비판하고 질시하는 일이란 결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실로 성경은 살인 행위에 대해 거의 불신자와도 같은 차원에서 다룹니다.  실제로 불신자가 자행하는 여러 가지 악행들 가운데 단연 살인죄는 그 죄악의 심각성과 관련하여 단연 선두에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둘째 사망의 불못에 들어갈 자들의 목록에 ‘살인한 자’를 포함시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라고 하신 바대로입니다. 혹여 성도의 신분으로서 살인죄를 범한다면, 이는 그가 애초부터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일 구원을 받는다면,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겠지만, 당사자로서는 무척이나 부끄러운 구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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