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6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64문답

[질문] 제5계명이 명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제5계명이 명하는 것은 윗사람과 아랫사람(롬 13:1, 7; 엡 5:21-22, 24; 6:1, 4-5, 9), 그리고 동료와 같은(롬 12:10), 각각의 여러 지위와 인륜 관계에서 각 사람의 명예를 존중하고 각 사람에 대한 의무를 수행하라는 것입니다.

소신앙고백 제64문답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질서에 대한 충성과 관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건 일반 세상사에서건 간에, 질서를 잘 지키는 데서 그 공동체는 평안 가운데 잘 유지될 수 있는 것이겠습니다. 즉 십계명의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라고 하신 것이 핵심이지만, 이것은 사람들과의 좀 더 폭 넓은 관계로 확장됩니다. 만에 하나가 자식이 제 부모에 대해 건방을 떨고, 자기보다 아랫사람 다루듯이 한다면, 그러한 가정이나 사회가 겪을 혼란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모습일 것입니다.

사람이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그런 사회 의존적 존재인 것이고, 이러한 사회 속에서 진소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데, 그러한 중에서도 특별한 혼란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일차적으로 상하 관계라고 하는 질서가 작동하기 때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이 질서는 사회의 그토록 많은 법률이나 계약으로써도 제정할 수 없는 것이고, 제정될 수도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인류 모두에게 심어주신 은사로 말미암아 보편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는 데서 놀라운 특징이 있습니다.

이러한 질서의 출발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 간에 설정되어야 하는 당위의 관계로부터 시작됩니다. 즉 우리는 비록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자들이 되었지만, 양자 간에는 엄연히 신분의 차이가 있는 것이므로, 질서가 지켜짐으로써 이 차이가 잘 유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마치 자식의 입장에서 제 부모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나아가고 아주 친근하게 관계할 수 있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부모라고 하는 창조주적 지위만큼은 마땅히 존중해야 하는 원리가 잘 작동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긴 부분을 할애하여 이 질서 유지의 중요성을 힘주어 선포하였습니다. 남편과 아내 간에 지켜져야 할 질서가 있고, 부모와 자녀 간에도 그러하며, 심지어 주인과 종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세상 유지를 위한 절대적 요소였으므로, 비단 교회만이 소유한 지혜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실상 하나님의 일반은총에 따른 자연(양심)법을 잘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중국의 삼강(三綱, 삼강오륜 중에서 삼강)에서 이것이 잘 강조된 것을 보게 됩니다. 한 번 기억을 되살려 보면, 첫째, 군위신강(君爲臣綱)이라 하여 ‘신하는 임금을 섬기는 것이 근본’이라고 했고, 부위자강(父爲子綱)이라 하여 ‘아들은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 근본’이라고 했고, 부위부강(夫爲婦綱)이라 하여 ’아내는 남편을 섬기는 것이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서쪽에 있는 중국은 예로부터 한국을 ‘동쪽에 있는 예의의 나라’라는 뜻의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 일컬었습니다. 어떤 학자는 우리나라가 중국에 조공을 잘 바쳤던 까닭에, 중국이 예를 지키는 나라라는 뜻으로 수례지방(守禮之邦)이라는 이름을 하사한 데서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이름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여하튼 예의를 잘 지키는 나라였던 것은 사실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가 자신의 철학으로서 피력한 정언명령(定言命令)의 범주에 속할 수 있을 정도로, 굳이 신앙의 세계에서가 아니라 할지라도 인류 보편에 적용되어야 하는 중요한 생활의 법칙입니다.

한 국가나 제반 사회의 각 영역에서 상하 관계가 뚜렷하여, 특별히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아끼면서 보살펴 주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지위를 존중하는 것은 인륜 관계에서 당연하므로, 성도들이 먼저 솔선수범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어느 모르든 자기보다 높은 한, 그의 명예를 존중해야 하는데, 이는 그 사람에게 합당한 예의로서 우대하는 데서 성립됩니다. 신앙고백문답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의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물론 먼저는 자발적이어야 하겠지만, 혹 그러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요구하시는 마땅한 의무임을 자각한다면, 그야말로 억지로라도 복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법률로서 제정되지 않으면 질서가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수밖에 없는데, 곧 국가적 질서 같은 경우는 대표적입니다. 바울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 3:1-2)라고 했고, “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롬 13:7)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이와 같은 명령은 이미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라”(눅 20:25)라고 하신 바로서 이미 가르침을 베풀어주신 데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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