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20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7문답

[질문]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이 무엇입니까?  [대답]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그분이 강생하시되 그처럼 비참한 형편에 태어나셨고(눅 2:7; 고후 8:9; 갈 4:4) 율법 아래 나셨으며(갈 4:4),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비참함을 겪다가(사 53:3; 눅 9:58; 요 4:6; 11:35; 히 2:18) 하나님의 진노와(시 22:1; 마 27:46; 사 53:10; 요일 2:2) 십자가의 저주의 죽음을 받으셨고(갈 3:13; 고전 15:3-4; 빌 2:8), 장사되셔서(사 53:9; 마 27:59-60; 행 13:29; 고전 15:3-4) 얼마 동안 죽음의 권세 아래 거하신 것입니다(마 12:40; 행 2:31).

제27문답에서 고백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의 여러 단계들은 상세히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사도신경과도 연결시켜서 살펴버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사도신경에서 ‘지옥에 내려가시고’가 없이 신앙을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지옥에 내려가시고’라고 한 부분이 제27문답에서는 모호하게 진술된 것입니다. 물론 핫지(A. A. Hodge)는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을 해설하면서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셨을 때에 장사되어 ‘얼마 동안 죽음의 권세 아래에 계셨다’라는 부분은 사실상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 가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지만 약간 억지(?)의 느낌이 있어 어색합니다.

먼저, 개혁교회는 사도신경에서 그리스도의 비하의 최종 단계를 ‘지옥에 내려가셨다’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한국 개신교가 사용하는 성경책과 찬송가 속지에는 공통적으로 사도신경이 실려 있는데, ‘지옥에 내려 가시고’라는 구절이 빠져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 개혁파 교회의 신앙고백이 이 부분을 명백히 가르치는 바와 배치됩니다.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44문은 “’지옥에 내려가시고’라는 말이 왜 첨가되었습니까?”라고 묻고, “내가 큰 고통과 중대한 시험을 당할 때에도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지옥의 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 구원하셨음을 확신하고 거기에서 풍성한 위로를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분은 그의 모든 고난을 통하여 특히 십자가에서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아픔과 공포와 지옥의 고통을 친히 당하심으로써 나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라고 답합니다.

1894년 언더우드 선교사는 한국 교회 최초로 찬양가를 발행하였는데 이때 ‘지옥에 내려 가시고’라는 구절이 정확하게 들어 있었습니다. 이후 1905년에 선교사 공회의가 ‘찬송시’를 발간하였을 때에도 ‘지옥에 내려 가시고’라는 내용은 계속 게재되었습니다. 하지만 감리교측에서도 선교사 존스와 라즈월어와 번커가 1897년 10월 15일에 찬미가를 편집하여 출판하였는데 이때 ‘지옥에 내려 가시고’라는 부분을 빼놓았습니다. 이후로도 감리교는 1905년에 이르기까지 세 차례에 걸쳐 사도신경을 개역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지옥에 내려 가시로’ 부분은 싣지 않았습니다. 이리하여 한국 교회는 각 교파에 따라 각기 자신들의 찬송가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05년에 장로교와 감리교가 찬송가를 합칠 것을 결의하였고, 작업에 들어가 드디어 1908년에 장◦감 연합공회의는 262곡으로 구성된 통일된 찬송가를 펴냈습니다. 이 찬송가는 1931년에 감리교가 ‘신정 찬송가’를, 1935년에 장로교가 ‘신편 찬송가’를 별도로 사용하기까지 초교파적으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찬송가의 사도신경에 ‘지옥에 내려 가시고’ 부분이 빠져버린 것입니다. 이후부터 한국 교회의 찬송가에서 더 이상 ‘지옥에 내려 가시고’ 구절은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일부 초기 사도신경 판본에는 이 내용이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존 칼빈은 이 부분이 초기의 사도신경 판본들에 실려 있지 않다 할지라도, “극히 유익한, 따라서 버려서는 안 될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필요하다”(2.16.8)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이것은 문자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칼빈의 해석은 명쾌합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육체적 죽음만 죽으셨다면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만족시키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혹독한 보응을 받는 일도 필요했다”(2.16.10).  그에 의하면,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지옥의 세력과 영원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맞서 ‘직접 맞붙어 싸우셔야’ 했습니다. 그것은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내리시는 죽음을 담당하셨다는 것과 … 하나님 앞에서 우리로서는 볼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심판을 받으셨다는 것”을 뜻합니다(2.16.10).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육체뿐 아니라 영혼으로도 고난을 당하셨으며, ‘저주받고 멸망한 인간의 두려운 고통’을 견디셨습니다. 이러한 고통 가운데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신 것입니다. “이 부르짖음이 영혼 깊은 곳의 고통과 번민에서 울려 퍼졌다”(2.16.11)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승리의 개가가 울려 퍼진다고 합니다. 승리자 그리스도(Christus victor)의 모습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죽음의 공포와 지옥의 고통을 안고서 마귀의 권세와 직접 맞붙어 싸우심으로써 그것들을 누르고 승리하셨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죽음 앞에 설 때 우리의 왕이 삼켜버리신 것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2.16.11).

정리하자면, 개혁교회는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다룰 때 사도신경과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을 통하여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표현까지 포함하여 다룹니다. ‘한국식(?) 사도신경’에 길들여져(?) 있는 장로교의 경우,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은 잘 모르는 채, 소신앙고백문답에만 익숙해 있는 편이어서, 대체적으로 이 부분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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