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2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0문답 묵상2018년

[질문]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죄와 비참한 처지에서 멸망하게 버려두셨습니까? [대답] 하나님께서는 영원부터 오직 그분의 선하신 뜻대로 어떤 사람들을 영생에 이르도록 선택하셨고(행 13:48; 엡 1:4-5; 살후 2:13-14; 딤후 1:9), 구속자로 말미암아 그들의 죄와 비참한 처지에서 건져 내어 구원의 지위에 이르게 하시려고 은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창 3:15; 17:7; 출 19:5-6; 렘 31:31-34; 마 20:28; 롬 3:20-22; 고전 11:25; 갈 3:21-22; 히 9:15).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20번부터는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를 배우게 됩니다. 즉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실 자를 어떻게 미리 선택하시고, 그렇게 선택하신 자들을 어떻게 죄와 비참한 처지에서 구원의 상태로 옮기시는가를 보게 됩니다.  사실 하나님께 범죄한 인간의 입장에서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자비뿐이겠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자비는 선택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고, 반드시 선택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이 사실을 선포하고 있는 성경 구절은 많지만 우선 눈에 띄는 것으로 “하나님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고 … 자기의 아들이 되게 하셨다”(엡 1:4-5)라고 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선택 교리가 성립되는 원천에 대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라고 한 부분은 주목을 요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신 일입니다. 이 이유 외에 다른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항상 선 중의 선이고 지혜 중의 지혜이고 능력 중의 능력입니다. 선택 교리와 관련해서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시느냐고 궁금해 하는 것은 사실상 하나님께서 왜 이 세상을 창조하셨는가 하고 궁금해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고 싶어하셨으므로 ‘선’이고, 그렇게 하셨으므로 ‘선’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이 ‘선하다’라고 할 때에,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주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주권의 내용도 가리킨다는 사실은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됩니다. 여기서 내용이란 당연히 ‘구원’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해서 선택 사상(주권)은 항상 구원 사상(내용)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어느 신학자가 말했듯이, 현재와도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빼면 바로 그 자체가 지옥이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이 그나마 적극적인 죄악에서 건져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능력으로써 이 세상을 권능의 왕국으로 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즉 권능의 왕국(세상)으로 하여금 은혜의 왕국(교회)을 돕도록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가 없다면 이 세상은 한 순간에 겆잡을 수 없는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말 것입니다. 이름하여 양육강식의 법칙만이 지배하는 정글의 모습과 다를 바 없겠습니다. 참으로 주권적 권능이 무한한 자비로써 역사되고 있는 ‘하나님의 선’의 이와 같은 특성 때문에 죄악의 무한한 정복욕과 전염성은 통제를 받아 세상이 그나마 지금과도 같은 나름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공상이나 감상과도 같은 뜬구름인 것이 아니라 아담 안에서 영원한 지옥 형벌에 처해 있는 비참한 인간들을 180도로 뒤바꾸어 놓는 놀랍고 위대한 능력입니다. 소신앙고백문답은 이러한 하나님의 선의 첫 자욱이 바로 선택 교리에서부터 풍성하게 나타났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하신 뜻대’로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주관하신 결과는 항상 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하나님의 주권의 선하심을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택 교리를 생각할 때에 “왜 하나님은 어떤 자는 버려두고 어떤 자만 택하셨는가?” 하는 무익한 질문을 되풀이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보기에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이 아주 불공평한 듯합니다. 동시에 조건 없는 선택 교리는 사람을 태만하게 만드는 것인양 생각합니다. 가령, “만약 하나님이 나를 구원을 얻도록 선택하셨다면 나는 무엇을 행하든지 구원은 받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본래 성경이 가르치는 선택 사상을 순전히 인간 차원에서만 생각하는 데 따른 것입니다. 선택 교리를 가르치는 성경은 다른 곳에서는 또한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는 선택은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사상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신앙고백문답이 선택 교리와 연결시켜 ‘은혜 언약을 세우셨다’고 한 말씀의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생명 언약 안에서 아담을 통해서 인간을 대하셨던 것 같이, 지금은 은혜 언약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택자들을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대가로 지불한 데 따른 것입니다.

무조건적 선택의 교리는 실로 위대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거의 신비라고 보아야 합니다. 인간으로서는 선택 교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성경이 선포하는 사실이 허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너댓살짜리 아이가 인간이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는게 되는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실제로 그러한 태어남이 허사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가 이 교리의 확실성을 받아들이게 될 때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반응이 있는데, 곧 신뢰심입니다. 자신에게는 하등의 자랑할 것이 없다는 고백과 더불어 단지 베드로처럼 말하고 행동하기만 하게 될 것입니다.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치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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