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6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006문답 묵상2018년

[질문]: 하나님의 신격에는 몇 위가 계십니까? [대답]: 하나님의 신격에는 성부, 성자, 성신, 삼위가 계십니다(마 3:16-17; 28:19; 고후 13:13; 벧전 1:2). 이 삼위는 한 하나님이며, 본질이 동일하시고 권능과 영광이 동등하십니다(시 45:6; 사 63:10; 요 1:1; 10:30; 14:16; 17:5; 행 5:3-4; 롬 8:9; 9:5; 골 2:9; 유 24-25).

여기 제6문답은 정확하게 ‘삼위일체론’에 대한 고백입니다. 성경은 삼위일체론을 선포하면서, 각각의 위격의 구별을 확실하게 매듭짓지만, 동시에 각 위격의 권능과 영광이 동등하시다는 데 대해서도 확실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역사를 보면, 어거스틴에 의해서 보다 확고부동한 삼위일체 교리가 확립되기까지, 이 교리의 신비를 해설하는 과정에서 자주 범하는 두 가지 중대한 실수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양식론’으로 빠져버렸습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배우가 연극에서 자신의 역할을 할 때 두 가 역할을 했듯이, 하나님은 일위이시지만 때에 따라 ‘다른 역을 맡는다’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역할을 할 경우, 아들과 성령은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삼위가 동시에 나타난 경우를 제시하면 어쩔줄 몰라 합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6,17)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들 앞에 계실 때 성신이 임하셨고 동시에 아버지게서는 하늘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1인 3역의 역할극이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둘째로, ‘군주론’이라는 주장인데 기본 사상은 삼위 중 일위만이 군주가 될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즉 아버지 하나님을 아들이나 성령보다 더 높게 보는 것입니다. 이 이론은 언뜻 성경과 일치되는 듯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가령,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요 14:28)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빌립보 2:6과 같은 본문을 읽으면, 이런 사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다”(빌 2:6)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무궁하신 신적 성질에 있어서 아버지와 동등하십니다. 단지, 인성의 입장에서 그런 낮아지심 스스로 취하셨기 때문에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라고 하셨을 뿐인 것입니다.

결론 짓자면, 성경의 증거에 따라 한 하나님이시지만, 삼위로 존재하셔서 각각 구별되시되, 동시에 위격상 삼위가 완벽하게 동등하신 삼위일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이름들’이라고 복수로 말씀하지도 않으셨지만, 동시에 한 분만 언급하시지 않은 것은, 삼위일체를 전제하지 않으면 될 수 없는 참으로 절묘한 표현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진리의 중요한 성격상 한 번 더 정확하게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이곳의 이름들이 ‘내가’, ‘나에게’, ‘나 자신’ 등과 같이 단순한 동의어였다면 “아버지의, 아들의, 성령의 이름으로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각 위가 각각의 주체성이나 인격을 가진 대로 “아버지의, 아들의, 성신의 이름으로 …”라고 확실하게 구분하셨습니다. 이것이 곧 삼위일체입니다. 당연히 이 교리는 성경 전체를 통해서 확실하게 나타나는 진리입니다. 참으로 계시의 시초부터 삼위일체 교리에 포용된 이 초석 같은 근본적 두 진리가 항상 동등하게 강조되고 있음은 흥미롭습니다. 하나님의 단일성, 곧 한 분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복수성, 즉 삼위라고 하는 사실이 동등하게 강조되었습니다. 이는 성경의 처음 시작하는 부분부터, 즉 “그리고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 ...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고 …”(창 1:26-27)라고 한 것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존재론적 특성은, 구속사 속에서 풍성하게 계시된 경륜적 삼위일체로서의 역사를 통해서 오늘날과 같은 위대한 구원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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