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5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9문답 묵상2018년

오늘날 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TV 뉴스와 신문은 연일 이런저런 사건들을 쏟아냅니다. 크게 보아 좋은 일과 나쁜 일입니다. 좋은 일들이야 당연히 행복한 것이로되, 나쁜 일들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비율로 따져보자면 이렇게 불행하고 나쁜 소식들이 더 많습니다. 그런 식으로 여러 가지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는 데에는 다양한 직접적이고도 간접적인 원인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궁극적인 원인은 무엇이겠습니까?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19문답은 이 문제와 관련됩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행의 배후에는 원칙적으로 인류는 심판에 처해져 있다는 진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이 사실을 증거합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 8:22). 물론 불신자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현 상태의 이 세계가 어느 정도 행복한 처소가 될 수 있고, 인간은 인간의 힘으로 죽음과 질병, 싸움과 전쟁을 소멸시킬 수 있으리라 자신만만해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죄 많은 인간의 생각과 마음이 얼마나 어둡고 공허해졌는가를 보여 줄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났기 때문입니다(롬 1:18).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이것을 계시하셨으므로, 인간이 이 진리를 피하려면 영락없이 스스로를 속여야만 합니다. 인간이 비참한 처지에 있다는 것은 자명한 진리입니다. 신앙고백문답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인간의 비참한 상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졌고, 그리고 그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에 영생하도록, 그리고 영생이 필요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전 3:11). 하지만 타락으로 인해 이 자격은 상실되었고, 이 필요성은 더 이상 충족될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항상 불안하고 공허한 상태에 있습니다. 성경은 해 아래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 존재의 공허를 통째로 보여줍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공허하도다”(전 1:2).

둘째로, 공허와 무기력과 함께 어느 누구도 전적으로 피할 수 없는 비참함이 이 생에서 쉴 새 없이 찾아들게 되었습니다. 욥의 친구가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욥 5:7)라고 말한 바와도 같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질병과 기근, 전쟁과 지진 같은 것들이 엄습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간의 생명을 그림자나, 꿈, 밤의 파수꾼으로 비교합니다. 결국 우리네 생명은 완전히 자라기도 전에 쉬 져버리는 풀이나 꽃과도 같을 때가 많습니다. 물론 때로는 행복이라는 것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잠깐뿐입니다. 인간이 처해 있는 비참한 처지는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셋째로, 그러다가 결국 죽음이라고 하는 인류 공통의 무서운 적에게 사로잡히게 됩니다. 사람은 예외 없이 죽음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아담의 죄로 인하여 인간이 죽는 것은 당연한 원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히 9:27). 이는 성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 역시 죽음이라고 하는 원수를 피할 수 없습니다(고전 15:26). 현대주의자들이 죽음을 출생과 같은 자연적인 것으로 취급하지만, 이는 자신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가만을 보여줄 뿐입니다. 이 세상 역사 속에서는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넷째로,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유기된 자들에게는 영원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진리는 특별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충분하고 분명한 방법으로 가르쳐졌습니다. 죽음 이후에 죄인이 들어가게 되는 ‘꺼지지 않는 불’(마 3:12)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심판의 불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데, 그럴지라도 구더기조차도 죽지 않고 계속 고통을 받는다’(마 9:48)고 했습니다. 그래서 ‘불과 유황에서 고난을 받고’(계 14:10), 그에 따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8:12)고 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이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결국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구원만큼은 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하려한 겉모습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가령 의술이 제아무리 발달해봤자 그야말로 거기서 거기입니다. 결정적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습니다. 동시에 한편에서는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단추 하나를 누름으로써 가공할 살상을 초래할 핵폭탄 이상의 폭탄을 개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세상은 근본적으로 이중적입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놓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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