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7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2문답 묵상2018년

[질문]: 사람이 창조받은 지위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행하신 특별한 섭리는 무엇입니까? [대답]: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완전한 순종을 조건으로 생명 언약을 맺으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먹는 것을 사망의 벌로써 금하셨습니다(창 2:16-17; 호 6:7; 갈 3:12; 약 2:10).

제12문답은 섭리로써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이제 보다 새롭고, 보다 나은 ‘생명 언약(행위 언약)’이라는 방법으로써 인류의 두 부류 중의 한 무리를 특별히 다스리신다는 데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생명 언약’으로써 창세 전에 택하신 자들을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언약 베푸시기는 성경 전체의 구속사를 통해서 점점 선명해지면서 발전해 나가다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에 이르게 됩니다.

구속사에 나타난 언약에는 생명 언약을 필두로,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모세 언약, 다윗 언약, 새 언약 선포, 새 언약 성취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제대로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언약 속에서 한 번이라도 동등한 위치에 서지 못했다고 하는 생각을 확실하게 해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언약 관계가 성립될 때 그 언약은 소위 말하는 상호 동등한 관계에서 맺는 ‘쌍무 계약’ 같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종류와 언약의 기간 등에 대한 결정을 인간과 상의하지 않으신 채 주권적으로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를 잘 이해함으로써 성경에 나타나는 최초의 언약을 그 특성을 부각시켜려는 의도로 ‘행위 언약’이라고 말할 때 일어날 수도 있는 위험이 제거됩니다. 이 위험이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듯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근본적으로 인간은 하나님께 대가를 요구할 수 없는 존재라고 선포합니다.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눅 17:9-10).

첫 언약은 ‘생명 언약’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이 언약의 특징을 아담에게 생명을 약속하시는 식으로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또 이것을 ‘행위 언약’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순종이라고 하는 행위를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이것은 행할 수 있지만, 저것은 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생명나무 열매’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대상으로 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여기서 나무 자체의 정체성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여하튼 앞엣 것은 먹어도 되지만, 뒤엣 것은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일종의 순종 또는 행동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태초에 창조되었을 때의 지위이고, 하나님께서 특별한 섭리를 베푸신 상황입니다. 간단하게 축약하자면 행위 언약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생명 언약에 대해 혹 행위 언약이라고 칭할 때에 그 참된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는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성경 전체의 언약의 특징인 ‘은혜 언약’, 바로 이 은혜 언약에 대치되거나 대등하게 맞서는 그런 차원에서의 행위 언약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행위는 ‘대가’를 연상케 하고, 은혜는 ‘무상’을 연상케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일반적인 두 대립 되는 관계 차원에서 이해하면 안 된다 하는 말입니다. 원칙적으로 성경 전체의 언약 사상은 ‘은혜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의 여러 언약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시고 완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로서의 ‘새 언약’, 바로 이 새 언약이라고 하는 큰 기둥에 붙어 있는 가지들과 같은 그런 가치를 갖는 것입니다.

생명 언약 혹은 행위 언약은 당시 아담에게 부족하거나 불공평한 것이 없었다는 사실 속에서도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아담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바를 실행하기에 필요한 모든 능력을 가진 자로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습니다(전 7:29). 그러므로 당시 사탄조차도 아담을 죄인으로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혹여 사탄이 아담에게 직접 나아갔다 할지라도 아담은 자신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도록 꾀이는 것임에 대해 잘 알 수 있었으므로 결코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했다”(딤전 2:14)고 한 것이 이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아담을 불순종에서 지키시기 위하여 여러 다른 좋은 것들로 둘러싸 놓으셨습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으라”(창 2:16). 하나님께서 죽음의 무서운 형벌로 아담을 위협하셨을 때 아담은 불순종을 피할 충분한 여지가 스스로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언약 사상과 관련하여 상기한 내용만큼은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은혜의 종교’이고, 이것은 ‘언약의 종교’라는 말임에 다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충분히 알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생명 언약, 아니 행위 언약에 대한 이해를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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