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9호. 광야교회로부터 얻는 교훈

그런데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수립할 수 있으려면, 그 땅에 기왕에 서 있는 기존 세력들을 축출해야만 합니다. 당시 가나안 땅은 황무지처럼 비어 있는 사막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족속들이 제각기 민족 공동체를 형성하여 나름대로 자기네 방식의 국가를 유지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러한 곳에 들어가서 새로운 별개의 한 나라를 수립하려면, 필연적으로 생사를 건 전쟁을 벌여 그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전쟁이라고 하는 아주 비극적인 상황이 부득불 전개되고, 온갖 아수라장의 혼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스라엘은 불한당 같은 침입자요, 정복자입니다. 그러면 가나안 족속들의 입장에서는 우선 생각하기를 ‘이스라엘 백성이 섬기는 하나님이라는 신은 공연히 남의 나라를 침략하게 하는 그런 신이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그렇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가나안 땅을 정복케 하시는 것은, 그들이 받아야 할 ‘분명한 죄’에 대한 대가를 지워 심판하시는 데서 되어지는 일입니다. 여기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고 하신 말씀이 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나안 족속은 피조물이 마땅히 섬겨야 할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각종 더러운 우상들을 경배하고, 그에 따라 온갖 부도덕을 자행한 데 대한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은혜를 입지 못하면 그러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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