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6호.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하지만 ‘더불어 사는 삶’의 원천으로서의 ‘토지의 사유권 금지’라고 하는 이 자연법 정신은 현실적으로는 철저하게 무시되어왔고, 그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새롭게 시작하실 때에 내신 성문법(성경)을 통해서 다시 명백히 규정하셨던 것입니다. 여하튼 오늘날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반대 체제로서 사회주의가 다시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후기에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의 균전론(均田論)이나 이익(李瀷, 1681-1763)의 한전론(限田論), 그리고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여전론(閭田論)과 정전론(井田論) 등이 주장되었습니다. 물론 중국에서 고래로부터 전해지던 이론들을 되살린 것이었습니다. 이들 중에서 가장 후대의 사람인 정약용이 적극적으로 토지의 공동 경작, 공동 분배를 주장했던 것은 확실히 당시의 정권 잡은 자들의 입장에서는 기절초풍할 정도로 철저한 사회주의 사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동네에서는 자기네 사상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인물로 정약용을 조선 최초의 공산주의자로 꼽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보자면, 그가 나중에 포기했다는 설도 있지만, 처음에 서학쟁이, 즉 천주교 신자였던 것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기독교의 공유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개연성도 다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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