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호.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찌어다

하나님의 법이 지닌 계시적 성격, 특히 이것이 미래를 지향하는 요소를 중요하게 지니고 있다는 특성상, 그것의 궁극적인 목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는데, 개혁된 교회의 신학자들은 이것이 바로 기독론(基督論)을 중심으로 한다는 데 일치를 보았던 것입니다. 기독론이란, 신론과도 같이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to be and to work)을 중심 주제로 다루는 학문입니다. 개혁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시며, 또 어떤 사역을 하셨는가에 대해서 거의 일치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역사 속에서 제반 치열한 논쟁과 심지어 무력이 동원되는 다툼, 그에 대한 재도전과 응전 등이 되풀이 되면서 형성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방법론에 대한 부분으로부터 시작하여 명칭에 대한 부분, 이성일인격에 대한 부분, 신분에 대한 부분, 중보자로서의 직책에 대한 부분, 속죄에 대한 부분 기타 등등으로 주제가 다시 세분화됩니다. 이렇게 기독론이란 다양한 측면 또는 차원에서 고찰될 수 있는 것이고, 그에 따라 다양한 견해들이 나올 수밖에 없으므로, 결국 교회가 전체적인 합의 하에 정확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 개혁파 교회가 소중한 유산으로 대대로 계승해 가고 있는 제반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의 신앙고백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좀 더 자세하다거나 혹은 좀 더 다른 시시비비를 따지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신앙고백으로서의 기독론이 조직신학의 학문 체계로서의 기독론으로 전락하는 불행한 상황이 초래되게 됩니다. 조직신학이란 학문 체제이므로 각 주제들마다 나름대로 깊고 넓은 지식 체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디 신학이란 처음부터 목적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보다 더 성경의 교훈에 맞게끔, 즉 성경이 계시하는 바에 따라 경배하겠다 하는 것이 취지와 목표이지만, 요즈음은 말 그대로 신앙은 배제된 채 학문 그 자체로 전락해 버렸다는 데서 깊은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운로드 (PDF, 2.76MB)

Posted in 이사야.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