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84호. 규모 있는 교회

여기에 한 가지 덧붙여, 성도들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성도 자신을 유익하게 해주는 ‘선한 의무’요, ‘유익한 의무’입니다. 교우들은 서로 이 사실을 일깨워주는 의무 수행에 만전을 다해야 합니다. 본래 배움의 길을 걷는 것은 인간의 의무입니다. 그러므로 국가까지도 이 일에 팔 걷어 부치고 나서는 것입니다. 가령, 어느 나라에서나 의무 교육이라는 제도를 두고 운영합니다. 문맹을 퇴치하는 것이야 말로 기본적인 인간성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토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라의 형편에 따라, 국가가 부담을 안고서까지 강제력을 동원하여 자국의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요즘 아이들은 의무 교육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국력이 신장하면서 상대적으로 쾌락산업이 발달하는 까닭에 온 사방이 눈으로 보고 즐기는 것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어린아이 적에는 대부분이 ‘깨달음의 미학’의 맛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복음의 영역에서는 더더욱 배움의 미학이 필요한 것이고, 이것을 의무라는 말을 붙여 표현해야 할 정도로 성경 학습의 당위성이 대두됩니다. 성도라면 모두가 교회라고 하는 학교에서 깨달음의 미학을 맛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개혁파 교회는 교회를 ‘예배 공동체’라는 관점과 더불어 평생 다녀야 하는 학교 차원, 곧 ‘교육 공동체’ 차원에서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육 목회’라는 말이 회자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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