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39호. 현대적 형태의 형상숭배 소고

인간은 본래 종교의 씨앗을 품고 있는 존재라고 하는 말은 귀가 따갑도록 듣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종교의 씨앗이 발아를 할 때에,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화에 대한 욕구입니다. 하나님을 눈으로 직접 보든지, 혹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상으로 만들든지 해야 속이 시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 할 때면 의례껏 ‘눈 앞에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것이요, 신자라 할지라도 신관이 명확하지 않으면 자기 스스로라도 어떤 형상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욕구 표출에 있어서 아주 노골적인 형태를 취하는 것이 로마 카톨릭 교회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아예 교리를 통해서 소위 성화(聖畵), 또는 성상(聖像)이라는 것들로써 하나님을 시각적으로 만들고 그리는 행위를 합법화시켜 놓았습니다. 천주교 성당에 한 번 가보십시오.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성화와 성상들이 온 사방에 널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심지어는 개개인 신자들의 가정에도 성상과 성화들을 안치하고, 그 앞에 무릎 꿇고 예배와 경배를 바칩니다. 성경의 진리에 비추어 볼 때 아주 무서운 우상숭배 행위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형상을 세우거나 만들게 되면 즉시 그것에 대한 숭배가 뒤따른다고 하는 사실 말입니다. 형상을 만든다는 것은 거기에서 하나님을 보거나 느끼겠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다음 단계로 경외의 대상으로 여겨버린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어거스틴은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우상을 바라보면서 그와 같이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사람치고, 그 우상이 자기의 기도와 예배를 받아주리라는 생각과,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리라는 희망을 품지 않는 자는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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