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36호. 성경의 신빙성 소고

적어도 개혁파 교회의 신앙 전통에 서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 미묘한 경계를 확실하게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라는 것은 비록 그 사람 자신의 인식 능력을 통해서 스스로에게 감지되는 것이긴 해도,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 자신이 스스로 그러한 감정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과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별개의 어떤 것입니다. 가령, 성경에서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갈 5:16)라고 했을 때, 이것은 분명히 우리 자신과는 구분되는 ‘별다른 인격체’의 ‘사역’을 전제한 것이고, 그러한 타자가 베푸시는 사역을 능동적이고도 적극적으로 ‘따르라’고 한 것입니다. 먼저는 이렇게 ‘별다른 인격체’가 존재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고, 다음으로 ‘그가 베푸시는 역사’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신앙주의자들’ 또는 ‘감정주의자들’은 바로 이 문제 앞에서 마치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는 존재인 듯이 그렇게 실패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지식 체계’에 있어서의 아주 중요한 결핍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진리 체계에 대해서 좀 더 예민하고 섬세한 이해력을 지니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이들 속에서는 도무지 지식이 체계적 구조를 형성할 여유가 없습니다. 이는 마치 여러 가지 재료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해서 하나의 건물을 지어야 하는데, 이 재료 저 재료를 이곳 저곳 아무 곳에나 마구잡이로 갖다 붙여서 겉보기에만 건물인 듯한 모습을 억지로 형성해 놓은 것과도 같습니다. ‘믿습니다!’라고 하는 겉모양의 ‘신앙체’를 그럴듯하게 꾸미고는 있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엉망진창으로 얽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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