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15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이중적 성격

자, 이제 무엇을 강조하려는 것인가가 명확해졌습니다. 우리가 발휘하는 일종의 ‘믿음의 행위’는, 그렇게 하는 것을 통하여 다음 단계로 구원이라고 하는 열매를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구원이 들어와 자리잡고 있다는 데 대한 일종의 시인, 또는 인정 혹은 고백하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복음을 따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이나 또는 어떠한 대가나 보상을 지불하고서도 살 수 없는 것이 복음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짜내는 ‘믿음’이라는 일종의 ‘행위’는 구원을 획득해내는 수단이나 방법인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구원을 인식하는 일종의 통로일 뿐인 것입니다. 바로 이 중요한 점 때문에 개혁 교회는 로마 카톨릭과 결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것이 되었든지를 무론하고, 일단 구원을 얻기 위해서 인간 쪽에서 무언가를 지불할 수 있다거나, 지불해야만 한다는 사상이 개입되면, 바로 그 순간부터 ‘복음’은 정체성을 상실해버리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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