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5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74문답

[질문] 제8계명이 명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제8계명이 명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나(창 30:30; 잠 13:4; 20:4; 27:23; 살후 3:10-12) 다른 사람의 부와 재산을(출 23:4-5; 레 25:35; 신 22:1-5; 엡 4:28; 빌 2:4) 합법적으로 얻고 증진시키라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제8계명에서의 ‘적극적인 명령’입니다. 핵심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뗄래야 뗄 수 없는 문제인 재물 획득에 있어서 일체 ‘합법적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계명인들 안 그렇겠는가 만은, 이 명령도 역시 사방팔방에 온갖 부정과 불법이 난무하는 오늘날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도로서는 일체의 재산 획득에 있어서 모든 것이 합법적이어야 합니다. 부정과 불법을 사용하거나 기대는 것은 상대적으로 자기의 자녀들의 의식주 문제를 책임지시는 분이신 하나님께 대한 신뢰 부족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복신앙이 팽배하다 보니까, 상대적으로 다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되는 것 같지만, 사실 하나님은 우리의 먹고 마시는 문제를 기본적으로 책임져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다. 곧 산상수훈에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31-34)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 바로 앞에서 “…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 6:30)라고 하심으로 매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앞에서는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마 6:27)라고 하셨습니다.

옛날에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태어날 때에 자기 먹을 것을 갖고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세계에서 이러한 인식이 편만했다는 것은, 실로 하나님께서 일반은총의 영역에도 베푸신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겠습니다. 사람이 굶어 죽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오늘날에는 옛날만큼 그렇게 빈번하지는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여하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의지하는 가운데, 이 땅에서 재물을 얻는 일체의 과정 속에서 공정과 공의를 유지해야 합니다. 불법과 불의의 유혹이 사방에서 엄습해 오겠지만, 단호히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혹 가난하게 산다 할지라도 그래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영광스럽고 복된 신분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중인데도, 불법과 불의를 통해서라도 재산을 모으려고 한다면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겠습니까?

서두에 단언했듯이 재물을 얻는 과정에서 불법을 의지하고 사용하는 것은 단연 불신앙 차원에서 평가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명확히 해두어야 합니다. 실로 사람이 사는 것은 스스로 노력하고 애써서 통장을 늘려가는데 있는 것이 결코 아니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써 그러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내신 후, 무려 40년 간이라는 세월에 걸쳐 훈련시키신 신앙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모세가 모압 광야에서 전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말을 보십시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신 8:3). 여기서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란, 자기의 자녀들을 돌보시기 위하여 취하시는 일체의 하나님의 뜻, 또는 하나님의 의지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의 먹거리 문제에 친히 개입하시사 주권적으로 돌보십니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굶어 죽는 일이 없게 해주십니다.

성도는 신앙의 가장 기초 도리로인 이 사실을 굳게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불법과 불의를 써서라도 재산을 얻도록 하는 일체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물론 사방에서 전개되고 있는 사회적 구조가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에는 많은 어려움을 주는 실제적인 장애가 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가운데 능히 이겨내야 하고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자신의 가난한 삶을 부끄러워 하는 것은 못난 태도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에 성도로서는 하나님의 소명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바로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어떤 이들은 부자로서 살게 하시지만, 또한 어떤 이들은 가난한 자로서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부자로서 살 수는 없는 법입니다. 부자로서 사는 것이 성도의 목표인 것도 아닙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손길을 믿고 의지하고, 그에 따라 모든 일에 있어서 정의롭게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도가 재산을 얻는 일체의 과정은 반드시 합법적이어야 합니다. 신앙 자세가 그러할 때에, 여기 74문답이 요구하듯이 비로소 타인을 위해서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예배순서 2019년 12월 15일 (10:00)
. (09:30 준비) 사도신경송-시편찬송-십계명송
. 송영
. 신앙고백 (다같이)
. 언약선포 (십계명 교독)
. 시편찬송 032편
. 목회기도 (설교자)
. 시편찬송 034-1편
. 말씀선포 막 3:7-12
. 말씀설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정도
. 시편찬송 034-2편
. 주님의 만찬 (매 분기말마다)
. 주기도문 (다같이)
. (예배 이후) 애찬 및 성도의 교제
. (13:00부터) 평강의 예배 (성경학습)
주언교회 -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를 계승하는 ...

  1. 주언교회는 하나님께서 개혁교회의 창시자 존 칼빈과 그의 사상을 계승한 개혁자들을 통해서 세계 최초로 프랑스 개혁교회(1559)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1560)를 출범시키심으로써 교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섭리에 감사드리며 이를 소중히 받듭니다.
  2. 주언교회는 교회개혁이란 동전의 양면의 관계와도 같이 분리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에 성립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는데 첫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한 신앙고백이 보다 더 정확하고 섬세한 '제반 신앙고백들'로 확정되었고 둘째는 '모든 것을 품위있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고 하신 바대로 신앙고백을 성경적으로 구현하는 교회질서(정치)가 제정된 것이었습니다.
  3. 주언교회는 이 두 가지 중요한 원리를 대하면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임재방식'이라는 신앙고백의 핵심에 깨달았고 동시에 이와 같은 신앙고백은 개혁된 교회의 전통에 따른 성경적 교회질서에 성립될 때에 비로소 '교회의 삼대 표지'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는 각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4. 주언교회는 더더욱 겸손히 고개숙여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신앙학(신학과 신앙)을 계속 깊이 배우고 계승하면서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 ...'라고 고백하는 바대로 보편의 교회와 함께 정통 신앙고백교회질서에 성립되는 것을 통하여 교회로서의 온전한 품위를 구현하는 사명을 위하여 한 길로 줄곧 나아갑니다.

성경해석의 원천: 기독교강요

주지의 사실이듯이 칼빈을 빼놓고서는 '참된 교회'에 대한 논의는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을 따른다고 외치지만 오히려 칼빈이 그렇게도 배척한 신앙 형태를 자행하는 어처구니 없는 모순도 벌어지고 있다. 진정으로 개혁사상을 계승하려 한다면 칼빈의 신학과 신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강요를 필수적으로 학습해야 하고, 그럴 경우 성경 해석과 선포를 보다 풍성하게 해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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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신앙의 모범: 칼빈의 개혁목회

칼빈의 위대성은 그의 독창성에서보다는 기독교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이해하면서 교회라고 하는 신앙의 현장에서 줄기차게 개혁을 실현해 나갔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칼빈의 신학은 책상 머리에서 이책저책 뒤적거려 짜낸 이론들로 그럴듯하게 뜯어 맞춘, 그래서 늘 말은 거창하게 하지만 정작 삶으로는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이론만의 종교주의자가 아니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임을 아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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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현장의 용사: 교회학 박사

제네바 교회를 섬기면서 칼빈은 목사회 모임을 이끌었고, 거기서 배출된 목사들이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의 개혁교회를 세웠다. 또한 칼빈에게서 개인적으로 배운 존 녹스 역시 스코틀랜드에서 세계 최초의 장로교회를 세웠다. 이것은 오늘날 사방에 그렇게도 많은 신학교들이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다운 목사가 배출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와 도전이 참으로 크고도 크다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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